‘골든타임’은 사건·사고 발생 초반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귀중한 시간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사실상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다. 우리나라 제조업도 지금은 한시가 급한 골든타임이다. 과감하면서도 파격적인 정책 지원과 실질적인 제조업 혁신 전략도 ‘지금이 아니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조업 위기, 시그널은 충분히 나왔다
제조업 위기가 유독 부각된 건 최근이지만 사실 이를 짐작할 수 있는 현상과 조사결과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다.
기업가의 경기 판단·예측·계획 변화추이를 관찰해 지수화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서 제조업의 어두운 전망을 살펴볼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제조업 BSI 실적치는 2012년부터 올해 3분기까지 분기 기준 100 이상을 한 번도 기록하지 못했다. BSI가 100 이하면 경기를 나쁘게 보는 기업이 좋게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BSI 및 경제심리지수(ESI)에 따르면 제조업의 10월 업황 BSI는 72로 전월 대비 2포인트(P) 떨어졌다. 제조업 업황 BSI는 지난 4월 82를 기록한 후 세월호 사고 등 여파로 5월 79, 6월 77, 7월 74, 8월 72로 계속 떨어졌다. 9월 74로 소폭 반등했다가 다시 8월 수준으로 내려간 것이다.
우리 제조업의 국제경쟁력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미국 경쟁력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중국, 인도에 이어 3위였던 우리나라 경쟁력은 2013년 5위로 떨어져 미국, 인도에 뒤처졌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2018년에는 브라질이 3위로 도약하며 한국은 6위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는 점이다.
우리 제조업계의 실적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 매출액 증가율은 2010년 18.7%에서 이듬해 13.5%, 2012년 4.1%, 2013년 0.7%로 계속 낮아졌다. 영업이익률도 2010년 7.8%, 2011년 6.6%, 2012년 5.7%, 2013년 5.7%로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여기에 고용창출 효과도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 27.2%였던 제조업의 고용 비중은 2000년 20.3%로 떨어졌다. 2010년에는 16.9%, 2013년에는 16.7%를 기록해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다.
◇제조업 공동화 우려…골든타임은 길어야 3년?
국내 사업여건이 악화되면서 우리 기업의 설비투자는 갈수록 해외에 집중되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 이뤄진 대기업의 투자처, 향후 계획만 살펴봐도 제조업 공동화는 먼 미래가 아닌 눈앞에 닥친 문제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2003~2012년) 해외설비투자는 국내 대비 네 배 속도로 증가했다. 설비투자 연평균 증가율이 국내는 4.0%를 기록한 반면에 해외는 17.2%를 기록한 것이다. 1993~2002년 기간 설비투자 증가율이 국내는 4.8%, 해외는 10.7%였는데 격차가 더 벌어졌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 동안 국내투자 대비 해외투자 비율은 9.3%에서 27.2%로 약 세 배 증가했다.
대한상의는 46인의 오피니언 리더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제조업 공동화를 막을 골든타임은 길어야 3년”이라고 평가했다. 제조업 공동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답변이 42.4%, 3년 후라는 답변이 33.3%, 5년 후라는 답변이 21.2%, 10년 후라는 답변이 3.1%로 나타났다. 결국 75% 이상이 이미 공동화가 시작됐거나 3년 내 시작된다고 평가한 것이다.
제조업 공동화가 본격화되면 사태 수습은 상당히 어려워진다. 일단 해외로 나간 기업은 국내로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 현지 사정이 악화되더라도 국내보다는 또 다른 국가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결국 침체된 국내 경기의 회복은 더욱 느려지고 외국인 투자도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업계는 정부가 우리 기업의 이탈을 막고 해외에 진출한 기업도 복귀(유턴기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한편 규제를 대폭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함께 우리 기업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제조업 혁신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얼마 남지 않은 골든타임을 놓치면 만회가 힘든 만큼 신속한 정책 추진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유턴기업 지원에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충분한 수준은 아니다”며 “무엇보다 파급효과가 큰 대기업의 국내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