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내외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나라 주력산업 국제경쟁력이 급속하게 저하되고 있다.
한국경제의 앞날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남유럽 국가들의 금융위기로 촉발된 유럽의 불황도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럽지역에 대한 수출도 당분간은 호조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세일가스의 본격적인 출현은 중동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인 미국으로의 원유수송량 급감에 따라 전 세계적인 신규 유조선 발주수요가 실종됐다. 그 여파로 국내 조선업계도 부진의 늪에 빠져 있다. 뿐만 아니라 휘발유 등 석유정제 제품의 해외수출도 이미 타격을 입고 있다. 납사를 출발물질로 하는 국내 석유화학산업도 조만간 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수출 주력산업인 자동차도 수출환경과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대표적인 세계일류상품인 스마트폰도 후발 중국업체의 급부상으로 인해 세계시장 점유율이 큰 폭으로 감소되고 있다고 한다.
대내외적 여건이 아무리 급변하더라도 우리산업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 산업분야에서 경쟁국보다 한걸음 앞선 창의적 실용기술에 바탕을 둔 ‘길목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된다.
‘길목’이란 반드시 통과 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길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길목기술’은 현재보다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보가 필요한 기술이라고 정의 할 수가 있다.
길목전략을 가장 잘 구사하는 대표적인 기업이 미국의 벡텔(Bechtel Intl. Corp)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회사는 1906년에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남보다 앞선 생각과 전략으로 경영해 오고 있다. 즉, 1910년대 포드사에서 T-형 자동차가 출시되자 자동차 대중화를 예견하였지만 벡텔사는 직접 자동차산업에 뛰어 들기보다는 도로건설이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한 단계 더 앞을 내다봤다. 벡텔사는 도로건설사업에 착수해 1920년대 말에 미국 20대 건설회사 반열에 올랐다. 이어서 1930년대는 석유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판단하고 정유시설 종합건설에 주력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또 원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 1980년대에는 원자력 발전소보다는 독립발전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2000년 이후에는 석유·가스개발에 미리 대응하는 순발력을 보여줬다.
이같이 벡텔사는 미래의 변화추이를 정확하게 파악, 신속하게 대처하는 길목전략을 적기에 구사했다. 그 결과 오늘날 140여국에서 5만여개의 건설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다국적 종합건설엔지니어링 회사로 성장했다.
‘길목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 보급 활용하는 것은 국가 기술경쟁력과 직결되는 핵심 미래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략은 산업과 기술의 변화추이를 주의 깊게 관찰해 ‘길목기술’을 예측하고 발굴하는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정책연구기관, 대학과 전문연구기관 그리고 산업계 등 모든 연구개발 주체가 혼연일체가 돼 확보대상 길목기술의 도출과 확보전략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수립된 전략에 따라서 예산확보 및 배분, 연구개발 수행 및 사업화 추진에 이르기까지 각 주체들이 역할을 분담해 완전한 협력 아래 각자 소임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우리사회는 ‘내 탓보다는 남의 탓’만을 하는 경향이 만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연구개발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막대한 기술개발 예산을 투입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만족할만한 수준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서운해한다.
연구자들은 정부가 심한 간섭만 하면서 결과만 내 놓으라고 한다며 하소연한다. 또한 일부 산·학·연 각 연구자들도 각자의 역할은 등한시 한 채 상대방에 대해서는 불평불만을 늘어놓기만 한다.
이래서야 국가 기술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길목기술’을 제대로 확보할 수가 있을까?
즐탁동기(〃啄同機)라는 옛말이 있다. 알속에 있던 병아리가 세상으로 나오려 할 때 부리로 껍질을 깨는 소리를 내면,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쪼아서 부화를 돕는다는 이야기이다. 병아리가 나올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어미닭이 성급하게 알을 깨뜨려도 병아리는 태어 날 수가 없고, 반대로 너무 늦게 도와줘도 병아리는 질식사 할 것이다. 정확한 시간에 완벽한 소통으로, 완벽하게 협력해야 새 생명이 순탄하게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길목기술’의 연구개발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길영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위원, kychoi@kric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