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우리나라 전력시장에도 수요자원 시장이 처음 개설된다. 수요자원 시장은 전력공급이 부족할 때 전력소비를 줄이는 대신 돈으로 받거나, 평시에도 발전비용이 비싼 발전기의 가동을 대신하면 그 발전 비용 차액을 버는 구조로 거래가 이뤄진다. 이런 과정은 전력거래소가 운영하는 도매전력시장에 새롭게 등장한 수요관리 사업자들과 기존 발전회사들 사이의 경쟁을 유발한다.
전기사용을 줄이는 대신 돈을 받는다는 것을 일반인이 납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수요와 공급이 항상 일치해야 하는 전력수급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2011년 9월 15일, 높은 전력수요에 대한 전력공급 능력 부족으로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전력이 차단됐던 순환정전을 상기하자. 만일, 당시에 전기 소비자들이 전력수요를 어느 정도 줄일 수만 있었다면 전력공급 부족현상은 해소되고 이에 따른 순환정전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전력수급 정책은 수요를 줄이는 수요 정책보다는 전력 생산량을 늘리는 공급 정책에 우선을 둬왔다. 수요지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서 원전이나 석탄화력 등, 발전비용이 싼 대규모 발전소를 집중 건설하고, 수요지까지 장거리 전력수송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지금까지 전력 정책의 핵심이었다.
덕분에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싼 편에 속하지만, 대신 원전 및 송전선로 건설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온실가스로 대표되는 환경문제 해결이라는 난제를 떠안게 됐다. 물론 그동안 정부는 의욕적인 수요관리 목표를 세우고 전력 감축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수요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 많지 않았던 관계로 목표 달성에 실패하게 되고 그 결과 예상보다 높아진 전력수요는 과거 수년간 겪어온 만성적인 전력 부족 현상의 주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번 개설된 수요자원 시장은 전력 수요를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능을 갖추고 있다. 수요관리사업자는 새로운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자신과 계약한 개별 소비자들의 전력사용량과 수요감축 능력을 관리한다. 또 이를 이용해 전력시장의 수요감축 입찰에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 전체의 전력 공급비용을 감축하고 전력계통의 대규모 고장 등에 대한 대처 능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송전비용이나 환경비용 등이 줄어드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얻는다면 금상첨화다.
수요관리는 전력 부문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신산업이다. 아직 미국 등 선진국의 기술 수준에는 일정 부분 못 미치는 점도 있지만, 수요자원 시장을 통해 보다 많은 신기술을 개발하고 경험을 축적한다면 해외시장 진출도 유망하다.
그러나 도매시장에서만 이뤄지는 수요자원 거래는 많은 규제와 함께 전체적인 규모나 수요자원의 가치창출 범위가 제한적이다. 따라서 중소 규모 산업체, 빌딩, 주택, 에너지저장장치 등 수없이 분산된 수요자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거래 범위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또 수요자원의 가치창출을 현 도매전력시장 내에 한정시키지 말고 소비자 부문까지 확대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선 전기요금에 실시간 전력공급비용과 연계된 가격제가 도입되고, 이를 바탕으로 진취적인 수많은 소규모 사업자들이 전력과 ICT를 결합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전력 판매부문 개방도 일정 부분 필요하다. 이것이 전력 창조경제의 진정한 모습이다.
김광인 숭실대 겸임교수(경제학과) kikim8909@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