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시스템반도체는 세계 30위권 내에 한국 기업의 이름이 없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80%가 시스템반도체이지만 정작 이 분야에서 미국, 대만은 물론 중국 기업에도 밀리는 모양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 1위인 미국 퀄컴이 독주하고 있고 지난해 세계 시스템반도체 기업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한 중국 스프레드트럼 등도 무섭게 부상했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 자료에 따르면 퀄컴은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용 AP 시장에서 매출 기준으로 53.6%를 점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 스마트폰 두 대 중 한 대는 퀄컴 AP를 채택한 셈이다.
애플, 미디어텍, 삼성전자도 스마트폰용 AP를 생산하지만 퀄컴의 점유율을 위협하기 힘든 수준이다. 지난해 이 시장에서 애플 15.7%, 미디어텍 9.7%, 삼성전자 7.9% 점유율을 기록했다.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퀄컴은 지난해 2위와 상당한 매출 격차를 둔 1위 기업이다. IC인사이츠의 세계 팹리스 기업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퀄컴은 전년 대비 31% 성장한 172억1100만달러(약 19조780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2위인 브로드컴(82억1900만달러, 약 9조1100억원)과 격차가 크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팹리스 상위 35개 기업 평균 매출은 2011년 452억원, 2012년 535억원, 2013년 511억원으로 정체에 빠졌다. 평균 순이익은 2011년 11억원, 2012년 12억원, 2013년 -65억원으로 악화됐다. 실질적으로 시장과 참여 기업이 줄어든 때문이다.
메모리 산업 경쟁력은 높지만 유독 시스템반도체에서 우리나라가 약한 이유가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대만보다 늦게 뛰어든 후발주자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핵심 기술이 없고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취약한 것을 약점으로 꼽는다.
국내에 메모리와 파운드리 시장이 잘 갖춰져 상대적으로 중소 팹리스 기업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지만 소품종 대량 생산 위주의 메모리 산업에 치우쳐 다품종 소량 생산을 지원하지 않는 구조도 한계로 지적한다. 중소 팹리스 기업과 대기업이 긴밀하게 협력해 새로운 시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문제는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지능형 자동차 등 새로운 기능의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치중했던 국내 팹리스들이 지난 3년간 정체를 겪으면서 새로운 분야 기술을 연구개발할 체력이 부족해졌다. 미래 시장 선점보다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기업이 많다.
송용호 한양대 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한국이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가진 것이 아니고 시스템반도체는 여전히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특히 고급 인력 양성과 연구개발에서 정부가 긴 안목으로 적극 지원하는게 중요해진 시기”라고 말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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