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아틸라 더 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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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산(祁蓮山)을 두고가니 가축을 기를 수가 없네요
연지산(燕支山)을 두고 가니 여인들은 아름다움을 잃었네요
다시 돌아오지 못하나요?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우리는 대(大)중원을 거쳐 눈물의 연지산(燕支山)을 떠났으니 서쪽으로 서쪽으로 카스피해, 볼가강에서 다뉴브강을 지나며 슬라브족, 알란족, 스키리족, 게피타이족, 고트족, 트라키아족 등을 모두 제압할 것이다. 아틸라, 너는 그곳에서 멈추면 안된다. 게르만족을 떨쳐버리고 대(大) 로마제국을 폐허로 만들라. 그리고 또 멈추면 안된다. 그곳에서 다시 동쪽으로 동쪽으로 너는 드디어 실라에 도착 할 것이다. 그곳이 바로 우리 부족을 데려갈 약속의 땅이다. 세상의 모든 땅을 정복하며 우리 훈족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갈 대제국의 제왕은 아틸라, 바로 너다.”
“나는 흉노의 번왕 휴도왕의 왕자로 태어났다. 비록 부친이 한나라에 패하여 지금은 궁정 마장의 노예로 살고 있지만 내 반드시 한나라 무제 황제의 총애를 얻을 것이고 또 반드시 내 족속이 위대한 제국을 세우리라.”
“내가 만든 이 길을 매우 위험한 족속이 다시 달려가리가.”
“철이 곧 황금이 될 것이다. 이 철은 우리 신라를 황금보검으로 만들 것이다. 이제 머언 서역까지 신라의 이름을 떨치리라. 전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느닷없는 시작이다.“
“신라가 곧 황금보검이다.”
김훈은 태어난지 얼마 안된 자신의 아들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일찍 눈을 뜬 아들의 눈동자는, 각각 달랐다. 회색빛과 호박색빛이었다.
“아, 아틸라...”
김훈은 아들의 눈을 조심스레 감겼다. 두려웠다. 무서웠다. 역사가 정색하고 덤벼들고 있었다. 김훈은 아들을 비단으로 감쌌다.
에첼은 자신이 낳은 아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쪽 째진 눈의 아들은 눈빛이 각각 달랐다. 회색빛과 호박색빛이었다.
“아, 아틸라...”
에르낙은 에첼과 에첼의 아들을 비단으로 감쌌다.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 에첼과 에첼의 아들을 볼까 심히 염려스러웠다.
“아틸라.”
“왕자님.”
“제왕님.”
에첼과 에르낙은 아틸라의 시신을 보았다. 그는 피를 토하고 죽었는지 얼굴과 가슴께가 피범벅이었다. 아틸라 옆으로 음료 잔이 나뒹굴고 있었다. 음료잔도 피범벅이었다. 에르낙이 음료잔을 들어 굶주린 개처럼 냄새를 맡았다.
“보이지 않는 독.”
에르낙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힐디코를 노려보았다. 힐디코는 이미 겁에 질려 있었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음료를 누가 주었느냐?”
에르낙은 힐디코의 가슴팍을 잡고 들어올렸다. 힐디코는 데롱데롱 매달려 울기만 했다. 에르낙은 힐디코를 획 던져버렸다.
“네가 무슨 짓을 한지 아느냐? 너는 모든 역사의 죄인이다.”
힐디코는 가녀린 몸으로 떨며 하염없이 울었다. 에르낙이 그녀를 죽이기 위해 긴 칼을 빼어들었다. 그녀는 이미 준비하고 있던 작은 단도를 빼어 에르낙을 향했다. 애르낙은 헛웃음을 픽 웃었다.
“넌 모든 역사의 과거, 모든 역사의 미래를 죽였다.”
힐디코는 단도를 든 채 에르낙에게 바짝 다가왔다. 에르낙은 긴 칼을 힐디코를 찔렀다. 힐디코가 무어라 말을 하려했다. 에르낙은 긴 칼을 더욱 깊이 꽂았다. 힐디코는 칼에 품은 채 에르낙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무언가 속삭였다. 에르낙은 귀를 기울여 들었다. 그의 얼굴이 점점 독한 개가 되어갔다.
“내 반드시 복수하리라.”
에르낙은 힐디코를 가벼이 떨구었다. 에첼은 아틸라를 잡고 울고 있었다.
“기련산(祁蓮山)을 두고가니 가축을 기를 수가 없네요
연지산(燕支山)을 두고 가니 여인들은 아름다움을 잃었네요
다시 돌아오지 못하나요?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에첼의 노랫소리가 에르낙의 드러난 얼굴뼈를 미치게 시리게 했다. 이제 누구도 이 노래를 부르지 않으리라. 에르낙의 눈가에 눈물이 스몄다.
“아틸라 더 실라. 우리가 간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