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름 놨다. ‘섀도보팅제’가 전면 폐지를 면했다.
섀도보팅(Shadow Voting)제는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가 찬반을 투표한 비율대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주총의 무산을 막고자 도입됐다. 섀도보팅제가 새해 1월 1일 폐지를 앞두고 제한적 유예권을 얻었다. 새해부터 3년간이다.
오는 1월 1일로 예정됐던 섀도보팅제 폐지를 앞두고 새해 상반기 주총 무산을 걱정해 온 많은 상장사들은 일단 반겼다. 국내에서 섀도보팅제를 이용하는 회사는 693개에 달한다. 문제는 조건부라는 점이다.
◇상장사들 “시간 벌었지만”…‘전자투표’ 해야 해
지난 3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는 ‘전자투표를 도입하고 모든 주주를 대상으로 의결권 행사 위임을 권유한 상장사’에 한해 감사·감사위원을 선임·해임할 때 2017년까지 섀도보팅 제도를 적용할 수 있게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연내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 새해 초 금융위원회가 정하는 ‘주총 취약 기업’은 감사·감사위원·사외이사 선임과 재무제표 승인 등 안건 결의 시 섀도보팅을 적용할 수 있다.
전자투표제는 말 그대로 주주가 주주총회 의안에 대해 ‘찬성’ ‘반대’ 의견을 안방에서도 클릭 한 번으로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한국예탁결제원이 2010년 8월부터 ‘K-e보트’ 시스템을 운영해왔지만 지금까지 사용률이 매우 낮았다. 국내 1800여개 상장사 중 한국예탁결제원과 전자투표시스템 계약을 한 상장사는 55개사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실제 사용 기업은 20개사가량이다.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로 전자투표제는 탄생 4년 만에 전환점을 맞은 셈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한 이튿날 한국예탁결제원은 새해 초면 300~400개 기업이 전자투표제를 이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예탁결제원 관계자는 “홈보팅시스템(Home Voting System) 시대가 온 셈”이라며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사용하듯 의결권을 행사하는 일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 인증을 하면 보유하고 있는 주식 중 전자투표시스템을 쓰는 기업 목록이 뜨고, 이를 클릭한 후 주총 의안에 찬반 표시를 하면 된다. 주총 개회일 10일 전부터 09~17시에 사용할 수 있으며 주총 전일 마감이다.
시스템 보급은 아직 더디다. 비용 부담을 느끼는 상장사도 적지 않다. 상장사들이 전자투표관리를 한국예탁결제원에 맡기고 내야 하는 금액은 주총 한 회당 100만~500만원(자본금 기준) 수준이다. 주주 수가 1만명이 넘으면 100%를 적용하고 1000명 미만이면 50%를 낸다. 임시 주주총회 시에는 30%다. 금융위에 따르면 금년 주총에서 전자투표를 도입한 기업은 8개사로 평균 378만원이 소요됐다.
◇전자투표 소매 걷어붙인 정부·기관
지난 11월 26일 금융위원회는 ‘주식시장 발전방안’을 발표하며 주주권 행사 절차 개선을 위한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및 전자투표제 활성화 조치’를 내놨다. 소액주주 등 일반주주의 주주총회 참석이 저조하다며 참석률 70%를 초과한 주주총회 비중이 지난해 43.8%에 머물렀다고 집계했다.
금융위는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시 주권예탁기관인 한국예탁결제원 시스템을 이용해 전자투표로 참여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라며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와 전자투표를 독려하고 나섰다.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즉 위임은 오프라인·온라인에서 메일·우편·직접 전달 방식 등으로 모두 가능하다.
금융위는 이번에 제도를 개선해 위임장 권유자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위임장서류를 게시하고 주주가 공인전자서명을 이용해 각 안건의 찬·반을 표기하는 전자적 방식의 위임장 용지 교부 방식을 도입했다. 이에 발맞춰 한국예탁결제원에서 전자위임장권유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이미 개발이 막바지로 테스트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는 이달 공동으로 주주총회지원 종합전담반을 구성하고 전자투표제·전자위임장권유시스템 시스템 개선과 홍보에 돌입했다. 새해 1월부터 주주총회 운영실무, 전자투표·전자위임장제도 이용안내 설명회를 서울과 지방에서 연다. 주주의 주주총회 참석을 유도차 유관기관 홈페이지에서 홍보하고 주주대상 안내문도 발송한다.
하지만 아직 전자투표와 전자위임장 시스템의 사용 흡사함을 두고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주주·상장사도 적지 않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섀도보팅제 폐지…‘사라진 것은 아니야’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조건(‘전자투표를 도입하고 모든 주주를 대상으로 의결권 행사 위임을 권유한 상장사’)’을 지키지 않는 회사는 내년 1월 1일부터 섀도보팅제를 사용할 수 없다.
섀도보팅제로 대표이사와 감사 선임 등 경영상 중요한 결정을 해온 상장사 대부분은 섀도보팅제 폐지를 반대해 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상장사 다섯 곳 중 두 곳(39.6%)이 섀도보팅제를 썼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47%가 섀도보팅제를 주총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주주가 소액주주의 의견을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주총을 운영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폐지가 시도된 것이다.
결국 소액주주 의결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추진된 섀도보팅제 폐지였지만 주총 자체가 무산되고 대다수 기업이 감사 선임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전경련·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강하게 제기됐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상장사들은 섀도보팅 폐지로 인해 일어날 ‘감사 또는 감사위원 선임불발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을 가장 우려했으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면 주가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최악의 경우 1년 뒤에도 감사·감사위원 선임에 실패하게 되면 상장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소형사나 주주 분산이 잘된 기업일수록 의결정족수 미달로 주총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감사 선임 등은 현행 상법상 최대 주주가 지분이 아무리 많아도 3%까지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다. 총주식의 25%인 의결정족수를 맞추려면 소액주주에게서 찬성표 22%를 얻어야 하는 셈이다. 이 의결권 행사 폭 ‘3%’의 제한, 혹은 의결정족수 ‘25%’ 이상 등 규제를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표. 전자투표의 주요 절차 (자료:한국예탁결제원)
표. 금융위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주식시장 발전방안 ‘주주권 행사 절차 개선’ (자료:금융위원회)
표. 사업연도별 상장사의 섀도보팅 요청 현황 (단위:개사, %, 자료:한경연)
표. 섀도보팅제 폐지시 안건별 결의 영향 (자료:대한상의)
표. 주요국 주총 결의요건 현황 (자료:대한상의)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