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따라 국가 발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진기지로서 공과대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도 공대의 창의적 인재양성과 산학협력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공대 혁신을 추진했다. 산학연이 참여하는 공과대학 혁신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공과대학 혁신방안과 이행방안이 만들어졌다. 공대 혁신방안의 핵심은 공대 교육·연구의 현장지향성 제고다. 이를 위한 평가시스템 개선 등의 내용이 이행방안에 담겼다.
하지만 공대 혁신은 짧은 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대학 스스로 변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 공대 혁신방안이 현장에 어떻게 적용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산학연 전문가들과 함께 짚어봤다.
◆참석자
△이성봉 미래창조과학부 미래인재정책국장
△이정재 KISTEP 인재정책실장
△이준식 공과대학혁신 특별위원회 위원장
△박규호 KAIST 부총장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사회=김동석 전자신문 부국장
◇사회(김동석 전자신문 부국장)=창조경제에서 공과대학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대의 실용성을 강화하고자 학교마다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대학 관점에서 기업과 정부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박규호 KAIST 부총장=정부가 창조경제를 국정 운영의 축으로 내놓은 것은 시기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세계 대학들도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KAIST도 캡스톤디자인 등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서 학생들에게 공학과 디자인 그리고 현장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교육한다. 캡스톤디자인 교육을 위해서는 실험실, 자재 등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고 목표에 부응하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대학이 바라는 정부의 역할은 하나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씨앗부터 뿌리고, 환경을 잘 만들어주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학생 창업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이다. KAIST는 기업가정신교육센터 만들어 학생들에게 창업 교육을 한다. 우려되는 것은 과연 학생들이 창업하고 나서 한국적 창업 생태계에서 얼마나 생존할지다. 정부는 학생들이 피해자로 전락하지 않게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것만 된다면 젊은 학생들이 용감하게 뛰어들 것이다.
◇이준식 공과대학혁신 특별위원회 위원장=공대는 전공과 실무능력을 갖춘 창의적 인재를 양성해서 우리 산업에 기여해야 하는 근본적 책무가 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기업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학생과 함께 산업체를 방문하려고 해도 기업인을 잘 알고 있는 교수가 없다.
멀어진 이유를 보면 대학이 기업으로부터 신뢰성을 상실한 것이 크다. 이유는 1990년대 들어 정부와 학계가 SCI 논문 발표 실적 위주로 모든 R&D 결과를 평가했기 때문이다.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논문으로 평가하다보니 학교 교육에도 문제가 생겼다. 예를 들어 기계공학분야에서 산업기계, 터빈, 펌프 등은 산업에서 정말 중요하지만 좋은 논문 쓰기는 어렵다. 그런데 논문으로 평가하니 해당 분야 교수가 없어졌다. 기업은 이 분야의 인력을 굉장히 원하지만 교육할 수 없는 불일치가 생긴다. 결국 대학에서 양성한 학생을 기업에 데려가서 실무에 활용하기 위해 다시 교육시켜야 한다. 거기서 불만이 생긴다.
기업의 요구도 다양하다. 대기업은 기초를 탄탄히 가르쳐 달라고 하고, 중소기업은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을 해달라고 한다. 그럼에도 공대는 그런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다. A대학은 실무 중심, B대학은 연구중심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또 공대 개혁에 따른 제도적 변화가 생길 텐데, 공대에 피로감을 주면 안 된다. 다른 대학은 그대로 두고 왜 공대만 요구하느냐는 반발이 생기면 정책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 다양한 지원과 정책이 필요하다.
◇사회=대학은 실용성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장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기업현장에서 느끼는 대학의 변화 모습과 정부 및 대학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국민소득 2만달러를 위한 교육과 4만달러를 위한 교육이 다르다. 이제까지 우리 대학 교육이 잘하고 잘못한 것을 따지기 전에 2만달러를 위한 교육 시스템은 잘 됐다. 문제는 4만달러를 위한 대학 교육 시스템과 철학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 2만달러 시대의 연장선상에서 보고 이제까지 해왔던 것에서 좀 더 잘하려다 보니 잘 안 된다.
이제까지 교육은 모방을 위한 교육, 모방을 위한 기업이었다. 선진국 대학 연구 내용을 가져와서 우리 것으로 확인하고 쫓아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모방이 아닌 창조로 가야 한다. 창조는 과학기술이 아니라 시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시장에 없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연구하면 창조가 일어나고 대학에서 공대 교육 어떻게 생길지 각 대학마다 특색 있게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려면 정부가 각 대학에 자율권을 충분히 줘야 한다.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모든 대학을 똑같이 만든다. 똑같이 만들면 발전이 없다. 차별화돼야 한다. 통일화하기 위한 정부 간섭보다는 차별화하기 위한 지원이 더 중요하다.
차별화는 결과로 얘기해야 한다. 과정으로 대학과 교수를 평가하면 안 된다. 결과만 평가해야 한다. 대학에 자율권 주고 평가시스템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사회=지난 4월에 발표된 공대 혁신방안의 키워드는 SCI 평가에서 산학협력 등 실용화 지표를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이런 변화가 잘 감지되고 있는지, 정부차원에서 말해 달라. 그리고 대학과 기업에 공대혁신을 위해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이성봉 미래창조과학부 미래인재정책국장=사회가 큰 변화의 시점에 다다랐다. 1990년대 연구중심 대학 개념이 나왔고 상당히 많은 대학이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며 논문과 학생 양성에 매진했다. 연구중심 대학을 버릴 필요는 없지만 어떤 연구가 필요한지는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대학 연구가 대학마다 다를 수 있지만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인구 감소로 대학 입학생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잠재력 있는 인재 양성 풀이 줄고 기업 선호 인재를 구할 풀도 줄어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대 혁신은 정부 주도보다 4~5년 뒤 대학과 산업에 닥칠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본다. 공대혁신 방안이 하나하나 대학에 적용되고 대학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맞춤형으로 가면 될 것이다.
산업계는 대학을 믿어야 한다. 첨단 인력이든 현장 인력이든 그것을 공급하는 것은 대학 시스템이다. 어떻게 바꿀지 꾸준히 산업계 의견을 전달하는 채널이 구축돼야 한다. 지역별 산업계와 지자체, 대학이 모여 논의하는 HR 관련 위원회 등이 유지될 수 있는 체제가 되면 개선 방향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정재 KISTEP 인재정책실장=대학 교육내용과 방법 그리고 환경이 지속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교육 성과가 좋으면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연구가 있다. 최근 연구를 보면 좋은 성과가 이뤄지는 단순한 원인이 있는데, 학생 몰입도가 높았을 때다. 그리고 몰입도를 높이는 환경이 조성됐을 때 교육 효과가 커지고, 사회적 기여도가 커졌다. 학생이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연구하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에 기업 쪽은 좀 더 사회적 책임 관점에서 능동적으로 대학과 협업에 참여해야 한다. 독일에 인포시스라는 벤처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있다. 이 회사는 글로벌 교육센터를 만들어 우수한 환경과 여건을 갖춰 직원 교육시킨다. 이 효과 때문인지 몰라도 이직률이 업계 평균 25%보다 낮은 10~15%다. 대부분의 기업이 주주의 이익 가치 제고가 가장 우선으로 하는데, 인포시스는 모든 주주의 존경심을 얻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로 둔다. 사회적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기업이 가지면 대학에 좀 더 오픈 마인드로 다가가서 협력할 수 있는 길이 생길 것이다.
◇사회=공대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학관이 일체화되고 그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각의 시각차에 대한 미스매치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박규호=창조경제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교수평가, 대학 내 대학, 대학 간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KAIST도 대학 내에 5개 대학이 있는데 대학별 교수평가 시스템을 달리하고, 학과별 평가시스템을 달리하는 것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준식=대학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대학과 산업과의 스킨십도 커져야 한다. 이것은 대학과 기업이 스스로 해야 한다.
◇황철주=기업에서 대학에 필요한 인력을 교육해 달라, 맞춤형 교육을 해달라고 하면 안 된다. 모방하기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창조는 세계에 없는 것을 하는 것이다. 창조는 기업 CEO 몫이고 그것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할 것인지는 직원과 연구원의 몫이다. 기초가 튼튼하고 희망이 있으면 된다.
◇이성봉=영화 ‘명량’에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꾸면 된다”는 말이 나온다. 사람을 키우고, 사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어려움이 보이는데 이걸 우리가 돌파해야 하고, 이걸 잘 찾아가면 희망이 보일 것이다.
◇이정재=미스매치 중에서 정부가 관여해서 풀 수 있는 것은 정보의 미스매치다. 기술정보뿐만 아니라 소통이 필요한 정보도 있는데 그것이 단절돼 있다. 정부 차원에서 정보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면 빠르고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사회=마지막으로 ‘공대 변화의 핵심은 ○○이다’에 들어갈 키워드를 하나씩 선정해 설명해 달라.
◇황철주=희망이다. 희망이 있는 사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유일한 성장동력은 사람뿐이다. 사람은 파괴동력도, 성장동력도 될 수 있다. 사람이 성장동력이 되려면 희망이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박규호=다양성 존중과 수평적 문화 확립이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창의력을 꽃피울 수 있는 형태가 돼야 한다. 평가 시스템도 같이 바뀌어야 한다.
수평적 문화가 만들어져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문화도 필요하다. 연구조직이 다른 학과, 다른 단과대로 자유롭게 수평적 이동하고 교류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준식=‘자율과 다양성’ 존중이다. 획일적 수단으로 통제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SCI 논문 위주로 치우친 것을 산업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 연구할 사람은 연구하고, 산업과 협력할 사람은 협력할 수 있게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정재=변화의 핵심은 ‘위기의식’이다. 스스로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능동적 태도가 중요하다. 공대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학령인구가 감소한다. 이는 생산가능 인구 감소로 이어진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우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고학력자가 아니라 우수 인재다. 사회는 학력이 아니라 능력 중심 사회로 변할 것이다.
10년 후면 지금 같은 수준의 학생들이 대학에 계속 들어올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 규모를 유지하면서 학생을 뽑으면 규모는 유지하되 질은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위기의식을 가지고 공대 혁신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이성봉=‘사람’이다. 공대혁신을 학교와 기업 관점에서 논의하는데 한 그룹을 더 포함시켜야 한다. 바로 학생이다. 지금 학생들이 바라보는 것과 다를 수 있다. 우리 10대, 20대가 어떤 모습으로 산학협력과 공대혁신을 이해할지 그들의 의견도 들어보겠다.
정리=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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