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노바디는 난해함이 하늘을 찌르는 영화다.
어쩌면 짧은 지면에 요약이 불가능 할지도 모르겠다. 국내 한 유력 포털에만 400개가 넘는 리뷰가 달렸는데, 영화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일 정도다. 이 때문에 ‘실패한 영화’라는 악평이 나오기도 했다. 감독이 이런 반응을 노린 것이라면, 그는 제대로 성공했다.
영화는 ‘토토의 천국’ ‘제8요일’로 유명한 벨기에의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이 연출했다. 2009년작이지만 국내에선 작년 10월에 개봉했다. 감독이 7년 동안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그만큼 영화는 세밀하다.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줄거리를 놓치기 쉽다.
때는 2092년. 효율성이 극에 달한 미래의 어느 기계적인 도시에, 인류 가운데 마지막으로 늙어 죽게 될 118살의 남자 ‘니모’가 병상에 누워있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아무도 늙어죽지 않게 된 세상에서 대중의 흥미가 니모에게 쏠린다. 한 기자가 그에게 접근해 인터뷰를 시도하고, 그는 자신이 살았던 아홉 개의 인생을 털어놓는다.
니모에게 어떻게 아홉 개의 인생이 존재했을까. 그가 아홉 살 때 부모가 이혼한다. 그는 부모 중 어느 한 명을 택할지, 아니면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지 세 개의 갈림길에 선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는 한 동네에 살던 여자 아이 세 명을 차례로 사귀게 된다. 둘을 곱하면 아홉 개의 인생이 나온다. 니모가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당연히 기자의 반응은 이렇다. “그게 뭐죠?”
미스터 노바디에는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키워드가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태어나기 직전’의 이야기다. 삼신할매 엉덩이 때리는 이야기 같은 건데, 서양에선 하늘에서 뛰놀던 아이가 인간의 아이로 태어날 때가 되면 천사가 코와 입술 사이를 손가락으로 눌러준다. 그러면 ‘인중’이라는 흔적이 생기는 것과 동시에 ‘미래’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천사의 실수로 니모는 이런 과정 없이 그냥 태어난다. 미래를 기억하게 된 것이다.
미래를 기억한다는 건 굉장히 낯선 개념이다.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에게 시간이란 항상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는 것이고, 이 과정은 비가역적이다. 즉 거스를 수 없다. 마치 한 번 물 속에 떨어뜨린 잉크방울은 계속 퍼져나가기만 할 뿐, 다시 잉크 방울로 모일 수 없는 것과 같다. 담배 연기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선 ‘엔트로피의 법칙’ 등 다양한 과학이론을 중간중간 등장시켜 이해를 돕는다. 영화는 ‘기억은 과거의 것’이라는 생각을 뒤집는다.
미래를 기억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니모는 선택의 순간마다 모든 선택을 미리 살아본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다. 항상 미래가 나쁘다고 나오니까.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 이 모든 것을 깨달은 니모가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118살의 니모와 기자가 있는 세상이 무너져내린다. 그 다음 나오는 대사. ‘당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홉살 짜리 어린아이의 상상일 뿐….’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