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도 전기차 민간 보급 경쟁률은 10.5대 1을 기록했다. 국내 지자체 중 친환경차 인식이 가장 높다는 뜻이다. 섬이기 때문에 충전 인프라 구축에 유리하고 제주의 ‘2030 카본프리 아일랜드’ 비전에 따른 정책적 의지가 도민 호응을 이끄는데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제주는 이 같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전기차 보급뿐 아니라, 친환경 전력 수요공급 체계와 신재생에너지 등 스마트그리드 인프라를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최적의 전기차 이용 환경에 친환경 전력 수급계획까지 갖춰
국내 처음 전기차 민간 보급을 추진한 제주는 최근 내년에 1500대의 전기차를 민간 위주로 공급키로 결정했다. 새해에는 제주에만 약 2500대의 전기차가 운행되는 셈이다. 이는 내년도 국내 전기차 시장의 약 40%에 달하는 수준이다. 제주는 일방적인 전기차 공급뿐 아니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도내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는 등 에너지 신사업을 주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기반의 차세대 이동수단으로 전기차용 전력 공급에도 새로운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며 “단순히 전기차 도시가 아닌 신재생에너지로 구현된 전기차 국제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는 1단계로 오는 2017년까지 공공기관과 대중교통 위주의 보급으로 2만9000대(10%), 2단계로 2020년까지 대중교통, 렌터카 중심의 9만4000대(30%), 2030년까지는 도내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각각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높은 전기차 가격과 충전 인프라 접근성 부족 등 현실적인 대책 마련에도 나설 방침이다. 전기차 보급 활성화에 필요한 조례를 제정해 관용차·버스를 단계적으로 전기차로 대체하기로 했다. 여기에 글로벌 전기차 업체를 제주에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전기차 가격을 낮추는 효과는 물론이고 국제적인 전기차 테스트베드로 시장 환경을 확대한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제주는 매년 100만명이 찾는 관광도시라는 이점을 활용해 전기차를 이용한 전기택시와 렌터카 사업도 추진한다. 이와 함께 최근 한국전력과 민간업체 위주의 사업자를 구성해 국내 최초로 전력재판매 모델을 적용한 민간 주도형 충전인프라 사업을 전개한다. 전력 역전송이 가능한 V2G(Vehicle To Grid)기술을 전기차·충전인프라와 연계하는 사업도 진행하기로 했다.
◇환경은 글로벌인데 산업 정책은 폐쇄적
제주의 경우 활발한 전기차 보급 정책에 비해 글로벌 경쟁력이 필요한 산업 정책은 크게 미흡한 상황이다. 전기차 시장이 민간으로 확대됨에 따라 관련 서비스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육지 등 외부 업체의 현지 진출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업 모델 창출을 위해서라도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육지 업체들은 전기차용 충전기, 관련 서비스 사업 등을 제주에서 영위할 수 없다. 제주도가 도내 업체를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외부 지역 사업자의 참여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내 기업들은 기술 개발보다는 외부 기업의 제품과 기술에 의지해 영업에만 집중하고 있다. 산업 육성보다는 유통 경쟁만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실제 전기차 충전기 분야만 해도 제주에 전문 개발·제조업체는 전무하다. 이런 상황에도 제주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약 1000기의 충전기가 구축돼 있다. 대부분 개발·생산은 육지에서 하고 외주업체를 통해 공급된 것이다. 당초 도내 기업의 기술·제품 경쟁력 확보를 위한 규제가 오히려 물류 등 유통 마진 상승과 유지 보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적이다. 결국 이는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충전기뿐 아니라 제주에 민간 주도의 관련 서비스 모델까지 나왔지만 육지 기업 참여 제한으로 수 년째 서비스 질은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이미 검증된 기술을 확보한 기업이 도내 기업과 협력해 제주시장에 진출하려해도 마땅한 업체를 찾지 못해 시장 진출을 망설이는 업체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전기차 업계 관계자는 “제주의 활발한 전기차 보급 정책과는 달리 실제 소비자가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충전기 등 관련 서비스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당초 산업 육성 취지와 맞지 않게 오히려 소비자 피해만 가중되는 현실이어서 하루빨리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