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팜한농과 농림축산식품부는 2012년 말 동양 최대 규모의 유리온실을 화성시 화옹간척지에 조성했다. 총 460억원을 투입해 축구장 21개가 들어갈 수 있는 넓이의 시설에서 연간 5500톤의 토마토를 생산해 수출하려고 했던 이 프로젝트는 대기업의 농업 진출에 대한 농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시설만 남긴 채 중단됐다.
한국농업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사건이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정책도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건국 이래 국고 지원에 의해 연명해오던 우리나라 농업은 산업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다. 농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무역개방 정책을 펼치고 있는 한국경제 발전의 최대 골칫거리가 돼 표류하고 있다. 이제 농업은 수술대 위에 눕혀놓고 근원적으로 혁신하는 것만이 회생을 위한 유일한 처방이 될 것이다.
네덜란드 같은 작은 나라가 농산물 수출에 있어 미국을 잇는 세계 2위 국가라는 것은 한국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웅변적으로 실증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와 투자가들은 농업이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것을 역설하고 있다. 농화학기업이었던 몬산토와 듀퐁이 일찌감치 농업기업으로 전환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것도 참조해야 할 것이다.
손재근 경북세계농업포럼 이사장은 덴마크에서는 농민들을 직접 지원하기 보다는 고등학생을 지원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ICT로 무장한 미래의 농민들이 전통농업을 혁신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덴마크가 농업강국이 된 것은 19세기 국민고등학교를 설립해 농업후계자를 양성한 것이 주효했다.
우리도 현재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외면 받는 농업계 고등학교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한국농업의 혁신을 위한 정예군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근원적 치유를 위한 훌륭한 처방이 될 것이다.
세상은 엄청나게 바뀌고 있다. 생각을 뒤집고 정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발상을 전환하면 불리한 여건 탓을 하지 않게 된다. 농촌인구의 고령화를 핑계로 삼기 보다는 장수(長壽)를 테마로 하는 전통마을 혹은 농원을 조성해 도시민들에게 힐링 체험을 제공하는 사업을 펼치는 긍정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스위스는 인삼을 전혀 재배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인삼시장 40%를 점유하고 있다. 인삼유효성분을 표준화한 덕분인데 이는 인삼종주국인 한국의 농업을 가장 부끄럽게 하는 대목 중 하나이다. 힘든 비닐하우스 일을 로봇팔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방안에서 제어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됨으로써 ICT 강국인 우리나라가 세계 농업을 오히려 선도할 수 있는 세상이 되고 있음을 정작 농민과 농정관계자들만이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10월 29일 농업분야의 원로들로 구성된 한국식물생명공학한림원(원장 이광웅 서울대 명예교수)과 DGIST 미래전략사업유치기획단이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에서 정재동 경북대 명예교수는 농대 교수 30%를 ICT 전공자로 교체하는 것이 한국농업을 혁신하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백기엽 충북대 교수는 인삼 등 특용작물재배를 탱크배양으로 대체할 수 있고 관련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고 언급했다. 김강권 전 농촌진흥청장은 사막에서 채소재배를 가능케 하는 원예시설을 중동 석유국가에 수출용으로 개발할 경우 의외로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식량자급 없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견해도 지배적이다. 이대로 두면 FTA 체결 이후 중국농산품에 의해 국내식량생산기반의 와해가 가속화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한국농업은 근원적 혁신을 미룬 채 침몰하거나 위기를 기회로 삼아 도약할 수 있는 엄중한 기로에 서 있음을 인식하고 근원적 혁신을 위한 중장기적인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농업 이외의 산업기반이 허약하여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방정부가 오히려 더 미래지향적인 농업정책을 표방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각오를 밝혀야 한다. 30대의 자수성가한 부농들이 쏟아져 나오게 해 젊은이들이 코리언드림을 안고 앞을 다투어 농촌으로 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바야흐로 농업을 근원적으로 혁신할 때다. ICT로 무장한 새로운 농업을 펼침으로써 아시아의 네덜란드, 극동의 덴마크가 되어 세계농업을 선도할 때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 ICT 시대에도 유효함을 입증해야 한다.
유장렬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미래전략사업유치기획단장 jrliu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