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딜레마에 빠진 한전의 전기요금 현실화

한전이 공기업이란 태생적 한계에 부딪쳤다. 원가 상승으로 전기요금 잠재적 인상 요인이 산적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요금 인하 검토를 지시하면서다.

16일 관계 당국 및 전력 업계에 따르면 유가 하락과 관련 정부는 전기요금 인하 가능성에 대한 검토 작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는 최근 유가 하락과 함께 배출권거래제, 유연탄 개별소비세 과세 등 인하·인상 요인을 점검해 전기요금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전기요금 인하 가능성이 공식화되면서 한전 내부는 난감한 분위기다. 사실 올해 들어 전력수급이 안정권에 들어서고 흑자 기조가 잡혀가면서 당분간은 전기요금 현실화 명분을 앞세운 인상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해 왔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연내 전기요금 인상 검토가 없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고, 실제로 지난해 11월 5.4% 인상 이후 전기요금은 오르지 않았다.

2004년 이후 계속 인상 일변도를 달려온 전기요금이 유가하락 유탄을 맞고 10년 만에 인하를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현재 한전의 공식 입장은 “정부의 결정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전기요금 조정 과정은 한전이 전기공급 약관을 수정해 이사회를 통과시킨 후 이를 산업부에 승인 받는 식이다. 전기요금 조정안을 내놓는 주체는 한전이지만 그 조정안의 인상과 인하 여부는 산업부의 결정이 크게 작용한다. 과거 한전은 전 김중겸 사장 시절, 산업부와 사전 조율 없이 단독으로 전기요금 인상안을 제출했지만 승인받지 못하고 미움만 산 경험도 있다.

주사위를 쥐고 있는 산업부는 모든 요인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가 하락과 한전의 본사 사옥 매각, 전력 구매가격 하향세 등 인하 요인이 많기는 하지만, 유연탄 개별소비세, 배출권거래제, 송변전 주변지역 지원, 지역자원시설세 등 단기적으로 원가 상승을 가져올 변수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내년도 국제 유가를 64~101달러로 폭넓게 예상할 정도로 유가 전망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지금의 하락세 만으로 인하 결론을 내리기도 힘들다. 증권가에서 이번 박 대통령의 지시와 관련해 실제 전기요금 하락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기도 하다.

전력 업계는 전반적인 전기 요금은 아니더라도 운영의 묘를 통해 간접적인 인하 효과를 거두는 방향에 무게를 싣고 있다. 올해 6월 교육용 요금이 인하된 것처럼 주택용 요금 등 서민 경제에 밀접한 일부 요금만 조정하는 식이다. 누진제 개선과 계절별·시간대별 요금 도입, 사회취약계층 지원 확대 등도 운영의 묘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다.

전력 업계 한 관계자는 “인상과 인하 요인이 복잡하게 혼재된 지금 상황에서 쉽게 전기요금의 향방을 결정하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정부 차원의 인하 기조가 잡힌 만큼 간접적으로라도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