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산업은 지금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대형 TV에선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로, 소형 모바일에서는 유리 기판을 이용한 평평한 디스플레이에서 플라스틱 기판을 이용한 변형 가능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로의 변화가 시작됐다.
‘쓰나미’는 처음엔 잔잔한 파도로 시작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거대한 해일이 된다. 디스플레이산업의 현재 변화는 잔잔한 파도일까 아니면 거대한 해일로 우리에게 밀어닥치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변화는 거대한 제조 패러다임의 변화 속 ‘전조현상’이라 볼 수 있다. OLED와 플렉시블의 등장은 현재 디스플레이 생산의 핵심인 사진석판(photolithography) 기술을 상온·상압에서 잉크젯 프린팅 등을 이용해 원하는 패턴을 기판에 직접 형성하는 디지털 석판(digital lithography) 기술로 전환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 석판 기술이 성공적으로 개발되면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제조뿐 아니라 유리 기판을 사용하는 고해상도 대형 LCD 제조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디지털 석판기술을 디스플레이 제조에 이용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하지만 장비와 재료 등의 개발 한계로 진척이 없었다. 이미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제조 패러다임의 변화가 기업과 개인, 그리고 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디스플레이 제조 패러다임 변화도 향후 업계 판도를 바꿔 놓을 정도로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디지털 석판기술에 필요한 연구를 산학연이 유기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이를 위한 첫걸음이 디지털 석판기술에 적용 가능한 유기재료 개발이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다음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유기소재 개발에 대한 꾸준한 지원이다. 전자재료용 정밀화학 소재는 개발기간이 길다. 더욱이 우리와 같은 후발주자는 글로벌 화학기업이 갖고 있는 물질특허를 피해야 하기 때문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둘째, 신규 개발된 소재를 디스플레이 소자에 적용하는 연구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개발된 소재의 특성을 소자를 통해 평가하고, 그 결과를 피드백해 성능이 개선된 소재를 개발하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그래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새로운 디스플레이 방식을 재발견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소재와 장비를 실제 디스플레이 제조에 적용해보는 테스트베드의 필요성이다. 개발된 소재를 실제 디스플레이에 적용해 보지 않고는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기업이 주도하는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아직 학계에서 개발된 소재를 실제 디스플레이 제조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50인치급의 디스플레이 생산이 가능한 파일럿 라인을 갖춘 국가 주도의 디스플레이연구소를 설립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결론적으로 지난 50년 동안 유지됐던 핵심 제조공정(사진석판)을 뛰어넘어 새로운 제조공정 (디지털 석판 기술)을 받아들이는 제조 패러다임의 변화야말로 앞으로 닥칠 쓰나미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쓰나미에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거대하고 튼튼한 방벽을 세우는 일이다. 소재 개발을 위한 산·학·연·관의 선순환적이고 유기적인 관계야말로 이러한 방벽이 될 수 있으며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 성장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김재훈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jhoon@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