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소프트웨어(SW)사업에 상호출자제한 대기업 참여가 제한된 지 2년이 가까워진다. 이해관계를 떠나 SW산업 구조가 이 조치 이후 변화하고 있다. 그간 공공SW사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대기업이 하나둘씩 공공사업을 정리한 반면에 일부 중견·중소기업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그동안 대형 사업을 수행해본 경험이 없는 중소기업은 여전히 높은 벽을 느낀다. 공공부문 발주자는 대기업의 막대한 자본력과 인력 동원 능력으로 수행되던 사업을 선뜻 중소기업에 맡기려니 믿음이 안 간다. 이런 배경에는 공공 SW사업에서 전문성과 기술력보다는 관리와 운영에 투입되는 동원 능력을 중시하는 풍토가 자리하고 있다.
반대로 대기업이 수행하던 대규모 공공SW사업을 중소기업이 수주한 후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으로 발전시킨 사례도 있다. 한국지역정보개발원이 발주한 약 100억원 규모 공공 SW유지보수사업을 중소기업이 수주해 전문성 있는 중소기업 간 연합으로 해결했다. 이는 중소기업끼리도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동시에 대기업 영역에서 중소기업 영역으로 공공사업을 확대하겠다는 당초 법 취지와도 부합된다. 사업관리 위주로 진행하던 대기업 업무방식에서 협력업체 특성을 배려한 업무중심으로 전환했다. 주사업자와 협력업체 대표자 간 회의를 통해 투명한 비용공개와 업무개선 노력, 직원들 간 공동체정신도 이 성공사례의 주요인이다.
특히 공공시장에서는 대기업만큼은 아니지만 규모를 보유한 중견기업이 주목받는다. 상당수 중견기업은 이 기회를 바탕으로 공격적 공공정보화 수주에 나서고 있다. 공공사업의 낮은 수익성과 2년이 채 안 되는 제도 적용 기간으로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는 중견기업은 없지만 SW산업의 핵심 세력으로 전면에 드러난 것은 분명하다.
일부에선 중견기업의 등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시각은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 노릇 한다’는 속담으로 자주 비유된다. 대기업보다 심한 불공정거래 경험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점차 사라지던 각종 불공정 거래 관행이 중견기업이 두각을 나타낸 이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게 중소기업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중견기업이 동참하는 동반성장은 SW산업에서 주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의 신뢰가 무너지면 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간 중견기업이 보여줬던 동반성장에 대한 소극적 자세로는 이런 위기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 때문에 최소한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는 의지를 천명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실천계획을 중견기업 스스로가 내놓아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하도급 거래 관리를 위한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지속적 자기관리도 고려해볼 만한 대안이다.
SW산업의 핵심 구성원으로서 중견기업 스스로가 책임감을 갖고 산업 발전에 기여한다면 곧 이익으로 돌아온다. 당국도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내부고객에 의존하지 않고 성장한 중견기업이 나와야 한다.
중견기업이 성장하고, 성장한 중견기업이 동반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책이다. 새로운 법·제도가 뿌리 내리고 과실을 맺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급한 접근이 위험하다는 견해도 타당하다. 발생하는 문제점을 짚어보고 이러한 문제점의 개선책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과실을 맺기 어려울 것이다. SW산업의 동반성장과 생태계 정상화를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논의할 때다.
이재철 한국SW산업협회 동반성장문화조성위원장(세기정보통신 대표) skic@seak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