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는 ‘규제 기요틴(단두대)’이라는 명분 아래 40년 가까이 시행해 온 ‘전기·정보통신공사 분리발주제도’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책임감리 대상공사는 분리발주 예외 범위에 포함시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전기·정보통신공사업계는 말 그대로 공황상태에 빠졌다. 40여년간 유지돼온 분리발주 제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규제 기요틴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언급한 것으로 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 효과 증대, 안전 강조를 위해 이른바 나쁜 규제를 발굴해 개선하는 것이다. 국민 안전이나 생명과 관련 없는 규제가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소명하지 못하면 해당 규제를 일괄 폐지하는 정책이다.
전기공사 분리발주는 지난 1976년 도입돼 국가경쟁력 강화는 물론이고 산업기술력 확보, 시공품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무엇보다 1만4000여개에 달하는 기업체가 창출하는 고용 효과가 적지 않다. 정보통신공사는 이보다 앞선 1971년에 이미 분리발주제도를 도입했다.
전기·통신공사는 인체로 비유하면 혈관에 해당되며 국가 기간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분리발주 법제화를 내걸었다. 당선 후 국정과제에도 중소기업의 입찰 참여기회 보장을 위한 분할·분리발주 의무화를 거듭 강조했다. 이는 헌법 제123조 제3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의 중소기업 보호·육성 의무 이행에 부합한다.
분리발주제도가 갖고 있는 여러 장점을 간과하고 단지 대형 건설업체의 논리만을 내세워 이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려는 시도는 중지돼야 한다. 내수경기 부진에 따라 경영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발주기관은 예산 절감이 아닌 삭감으로 인식될 정도로 가혹하게 공사비를 산정하고 있다. 엄동설한에 속옷만 걸치고 거리에 내몰리는 상황인 셈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분리발주를 폐지한다거나 책임 감리제 강화를 이유로 분리발주 대상 공사를 축소한다면 중소 전기·통신공사업계는 존폐 위기에 몰릴 것이 뻔하다.
전기·통신공사 분리발주 제도는 대·중소기업 간 공정 경쟁 유도를 위해 도입됐다. 중소기업이 하도급 구조에서 벗어나 대형 건설업체와 동등한 조건으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경쟁 시스템으로 정착된 것이다.
한국생산성본부와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전기공사업과 정보통신공사업의 부가가치율(46.5%, 47.4%)은 종합건설업(33.4%)보다 1.2~1.4배 높다. 고용계수(매출액 10억원당 고용인원)도 전기공사업(28.7인)과 정보통신공사업(29.5인)이 종합건설업(14.2인)보다 두 배가량 높다. 분리발주가 폐지되면 고용인원은 적어도 수만명이 감소될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또 분리발주 폐지로 중소 전기통신 전문기업은 대형 건설사에 하도급으로 전락해 기업 존립기반이 붕괴되고 기술개발보다는 오직 공사수주를 위한 로비에만 치중할 것이 자명하다. 기술개발 동기 상실로 산업경쟁력 약화는 물론이고 대형 건설업계는 불로소득에 가까운 하도급 차액을 챙기게 돼 양극화는 더 심화할 것이다.
분리발주 제도 폐지는 중소기업이 하도급 업체로 전락하든지, 종합건설업 면허를 새로 취득해 입찰에 참여하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무책임한 조치다. 지금이라도 중소기업 육성과 대통령의 신뢰를 고려해 분리발주 폐지 시도는 중지돼야 한다.
장철호 한국전기공사협회장 ceo@kec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