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A씨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며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입고 나갈 셔츠를 다리미로 편다. 회사에 나와 컴퓨터를 켜고 차가운 사무실에 온풍기를 켠다. 공기가 탁하면 가습기를 틀거나 공기청정기를 돌린다. 오늘은 야근이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 전업 주부 B씨는 전기 진공청소기로 집 안을 청소하고 세탁기로 빨래를 한다. 전기밥솥과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식사를 준비한다. 최근에는 가스레인지를 전기레인지로 바꿨다. 낮에는 보일러를 끄고 전기장판 속에 들어가 TV를 본다.
전자기기 홍수시대다. 가정과 직장에서 하루 종일 많은 전자·가전제품을 사용한다. 그러나 생활밀착 가전기기의 전자파 ‘인체보호기준’이 없다. 전자파가 얼마나 나오는지, 이것이 내 몸에 해로운지 무해한지도 알 수가 없다.
◇전자파 등급제, ‘휴대전화’에서 ‘가전’으로 확장되나
현재 국내에는 휴대전화 전자파 등급제가 시행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2년 4월 전자파 인체보호기준을 만족하는 때에만 휴대전화 제품을 출시하도록 하는 ‘전자파 흡수율 측정’을 의무화했다.
스마트폰 시대가 오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빈도가 훨씬 높아지자 지난 2012년 5월 전파법을 개정해 ‘휴대전화 전자파 등급제’까지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신체 중 머리는 전자파에 가장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1일부터 휴대전화와 이동통신기지국은 전자파 등급을 의무적으로 표시하게 됐다. 전자파 등급제는 국내에 출시되는 모든 휴대전화와 준공되는 이동통신기지국의 전자파 등급을 표시하게 했다. 휴대전화의 전자파 등급은 두 개 등급으로 분류하고 휴대전화에 측정값 또는 등급이 표시돼 있다. 지난해 자율표시제를 시행했을 때 국산 휴대전화 전자파 인체흡수율이 외산 제품보다 낮게 나오기도 했다.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할 때 전자파 흡수율을 참고해 구매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현재 일상에서 사용되는 전자·가전기기는 전자파 흡수율 측정이나 전자파등급제 등 전자파 인체보호기준 마련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전자파가 얼마나 나오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전자파에 민감한 임산부들은 전자파가 통하지 않는 의류를 구매해 입는 등 자구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막연한 전자파 공포에 국회와 정부가 나섰다.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휴대폰 등 무선 설비기기에만 적용하던 전자파 인체보호기준을 생활·전기·전자기기에도 적용하는 전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몇 차례 변경을 거쳐 현재 소관위원회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홍종학 의원은 “생활 전자기기의 사용 방법과 시간, 사용자의 신체적 조건에 따라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려운 실정이지만 전자파에 취약한 임산부, 소아·청소년도 안전하게 생활 전자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전기·전자기기에도 전자파 인체보호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민간 전자파(EMF)인증 ‘가격 비싸’…중소기업 과도한 부담
지난해 ‘온수매트’에서 전자파가 나온다는 지상파 방송보도는 소비자에게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 때문에 온수매트 업체들은 올해 EMF 인증을 내세우며 소비자를 안심시키는 데 일제히 나섰다.
현재 업체들은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에서 인증을 받고 있다. 연구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전기매트와 온수매트를 만드는 수십 개의 중소기업이 EMF 인증을 받은 목록이 나온다.
EMF 인증은 2mG(밀리가우스) 이하 전자파를 방출하는 제품과 공장심사 과정을 거쳐 부여한다. 다만 민간 인증이다 보니 테스트 비용이 수백만원에 달한다.
국립전파연구원 관계자는 “KTC는 민간 연구기관으로 스웨덴의 정보사무기기 전자파 관련 규정(TCO)을 가져다 우리나라의 가전기기 기준에 맞춰서 시험을 해주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가전제품 전자파 ‘인증’이 없다 보니 현재 EMF 인증은 민간에서 하고 있는 것인데 비용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