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우리가 사용할 기술을 예측하는 것은 가장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는 간단치 않아서 흔히 기술을 만들어놓고 이것이 미래의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개인용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설계한 컴퓨터 과학의 선구자 앨런 케이(Alan Kay)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사회이론가들은 이를 ‘새로운 욕망의 창출’이라고 말한다.
미래 기술을 예측하는 것이 어렵지만 이런저런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 하나는 델파이(Delphi) 기법이라는 것인데, 이는 그동안 제시된 미래기술들의 목록을 만들고 전문가들에게 각각의 실현가능성, 실현가능시기 등을 물어보되 몇 차례 반복해 합의된 예측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시나리오 기법이 있는데, 몇 가지 변수들을 토대로 미래에 전개될 시나리오 몇 가지를 상정하는 것이다. 최선의 시나리오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미리 그려볼 수 있지만, 구체적인 기술을 예측할 수 있는 기법은 아니다.
최근 많이 사용되는 기법은 통계적 예측 모델을 활용하는 것이다. 통계적 모델의 예측력은 모델 수립에 투입되는 사례가 많을수록 정확해지며, 따라서 최근 빅데이터 활용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런 예측 모델이 각광받고 있다. 몇 년 전 구글은 미국 내 독감 관련 검색어의 지역별 발생빈도에 관한 빅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독감 발생 지역을 예측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기법들은 구체적인 개별 기술 예측에는 한계가 있다. 더 중요한 점은 기존 상황이나 기술 발전 경로에 토대를 둔다는 점에서 다분히 ‘현재 중심적’이다. 이제까지의 발전이 보여준 관성, 즉 기울기가 미래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한다.
따라서 이런 기법으로는 불확정적인 기술의 미래, 창의적인 기술의 개발을 예측할 수 없다. 미래 기술이 현재에 기반을 두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역사적으로 흔히 발견된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미래기술 예측 방법론이 요구된다.
이 방법론은 문학 및 예술의 창의력과 기술 사이의 공명에 의거하는 것이다. 즉 예술적, 문학적 상상력을 활용해 미래 기술을 예측하는 것이다. 이에 이 기법을 ‘전매개(premediation)’ 방법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전매개는 미디어 이론가 리처드 그루신(Richard Grusin)이 1999년 고안한 개념으로, 미래의 모습을 사전에(pre-) 그려내는 미디어나 문학의 관습을 지칭한다.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한 미래 기술이 현실화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아서 클락(Arthur Clarke)은 1945년 인공위성을 통한 통신을 구상했고 20년 후 이는 실현됐다. 태블릿PC, 화상회의, 인공지능, 음성합성, 원격섹스 등도 마찬가지였다.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인터스텔라’ 등 수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기술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전매개 방법론은 이런 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예술 작품이 구상한 기술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런 작품들 속에 묘사된 기술적 내용을 수집하고 이를 ‘기술적 대상’으로 추출하는 텍스트 및 영상 처리가 요구된다. 최근 빅데이터 기술과 자연어 처리 기술은 각각 기술적 내용의 수집과 기술적 대상으로의 추출을 가능케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집단 지성을 활용하는 크라우드 소싱 기술도 적용할 수 있다.
미래의 기술은 현재에 토대를 둔 선형적 관성에 의해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전매개 방법론은 미래에 일어날 문학적 상상력과 기술 사이의 ‘우발적 공명’을 한발 앞서 보여주는 창이 될 것이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leej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