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21세기는 지식사회다.
눈을 뜨자마자 과학지식을 기반으로 한 첨단과학기기에 둘러싸이게 된다. 길을 나서도, 학교에 가서도 온통 과학문명이다. 그러나 이것이 물질문명일진데 이 때문에 새로운 문화가 나날이 생겨난다. 1차선 도로에서 2차선 길에 나서면 어리둥절해지듯이 도로 위의 작은 문화적 충격에도 머리가 어지럽다. 신호를 잘 지키는 것도, 앞차와의 일정거리를 두는 것도 교통문화에 속한다.
북한에서 나타난 최근 골칫거리 중 하나가 사용자 300만을 넘어서는 휴대폰의 문화라고 한다. 물론 우리는 더 심각하다. 바야흐로 문화와 문명이 뒤섞여 혼란스럽던 중세기 이후 이제는 문명이 앞서고 문화가 이를 따라가는 대역전의 드라마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새로운 원리의 발견이나 발명 없이도 무수한 창조가 나오며 진화론처럼 조금씩 변해간다고 생각하지만 뒤바뀐 문명-문화는 한가한 생각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2010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첫 시도가 있었다. 다른 전공자와의 짝짓기 즉 이종교합이 그것이다.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서로가 살아온 배경과 생업이 전혀 다른 사람을 페어링(pairing)해 작품작업을 하게 한 것이다. 시 쓰는 사람과 그림 그리는 사람, 소설 쓰는 사람과 조각하는 사람이 2인 3각 게임을 하게 한 것이다. 어쩌면 이제는 과학자하고 예술가하고 짝짓기 할 시점에 와있는지 모르겠다.
난 최근 ‘과학의 문화화, 문화의 과학화’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물론 과학과 예술이 다르다는 가정에서 출발했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점보다는 같은 점이 더 많다.
확인을 위해 중세 이전의 옛날로 돌아가 보자. 거기에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학문의 뿌리가 있고 지금 예술의 원천도 있다. 어떻게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건 껍질뿐이니 본질적으로는 똑 같다.
그리스 서사시의 은유를 지금 어떤 문학도 벗어날 수 없고 소크라테스의 철학, 아르키메데스의 부력 등 뭐하나 달라진 게 없다. 그 당시 기술의 꼭짓점인 화학·물리학, 이의 기본이 되는 수학 또 이를 뒷받침 해주는 철학이나 종교학이 하나에 수렴함을 쉽게 알 수 있다.
당시엔 과학자라는 것이 따로 없었고 한사람이 수학·철학·종교학의 통합 대가이었던 것이다. 물리학에서의 장 이론은 지금의 네트워크 이론이며 이제 빛이 입자냐 파동이냐는 아무런 다툼의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문화와 과학은 본질적으로 같아서 자율성, 독창성, 다양성, 시간축적성, 비경제성이 같이 통한다. 다른 점 하나를 들어보면 역동성이다. 문화는 차츰차츰이지만 과학은 갑자기 점프하는 이벤트적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를 그린 것 외에 20개 정도의 걸작을 남긴 중세기의 절세의 화가이자 조각가, 작곡가, 과학자, 기술자, 수학자, 철학자, 발명가다.
최근에 밝혀진 것 또 하나는 훌륭한 요리사라는 것이다. 또 해부학을 연구했으니 의사 또는 병리학자라고도 할 수 있다. 무기를 설계하고 군사지도를 만들었고 비행기를 설계하고 기하학을 연구했으며 유체, 원소, 물, 공기, 불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였다.
집중식 교회건축을 위한 건축기술도, 2중구조의 도시설계 같은 도시공학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가 남긴 레시피로 오늘날 이탈리아의 레스토랑이 성업 중이라고 하니 그를 새삼 재조명해 볼 이유가 있다.
다빈치는 “그저 상상만으로써 자연과 인간 사이의 통역자가 되려고 한 예술가들을 믿지 말라. 실험으로부터 시작해 그로써 이론을 검증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우리에게는 경제도시 서울보다 예술과 과학과 학문이 있는 중세기의 피렌체 같은 도시가 필요하고 논문, 특허, 발명보다는 계량화가 안 되는 인간중심, 감성중심의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가 숭상하는 관료주의는 아는 것만을 효율적인 관리체제로 만드는데 익숙하니 믿을게 못 되고 근대국가의 맹점인 자본국가, 자유경제주의는 돈만 앞세워 삶의 가치를 찾아내기 어렵고 국민에게 정성을 들이지 않으니 국민은 차츰 몸은 있으나 머리가 없는 바보로 돼간다.
문화가 없는 과학은 인간의 내재적 욕망을 무시한 것으로 그 생명이 없으며 과학이 없는 문화는 사회에 악폐를 주어 오히려 과학발전에 장애가 된다.
기술자는 가능한 것만을 생각하고 과학자는 인간성이 부족하니 답답하다. 유일한 답은 과학과 문화의 간격을 좁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마치 고대에 신을 구하고 중세에 신을 버린데 이어 이제는 신과 인간이 하나가 돼야 하듯이 말이다.
문정기 지역문화자치연구소 이사장 jgmoon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