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겉은 글로벌, 속은 국지적

[기자수첩]겉은 글로벌, 속은 국지적

새해 제주에 달리는 전기차 수가 2500대를 넘어선다. 국내 전기차 10대 중 절반이 제주 차량으로 도내 차량 29만대 중 약 1%가 매연을 전혀 뿜지 않는 친환경차로 채워지는 것이다. 아직 일반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적은 수지만 전 세계를 통틀어 제주처럼 전기차 비중이 높은 도시도 찾아보기 드물다.

제주는 이미 2012년부터 전기차 보급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등 스마트그리드 인프라를 구축해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2030년 카본프리 아일랜드’ 비전을 선포해 실천하고 있다. 2017년까지 민간을 포함해 공공기관·대중교통 중심으로 전기차 2만9000대(10%)를, 2020년까지 9만4000대(30%)를 단계적으로 보급해 2030년까지 도내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섬 지역이라는 제주의 환경적 이점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예산확보는 물론이고 전기차 공동구매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비전 실현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단순한 전기차 도시가 아닌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차별화된 전기차 국제도시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다.

하지만 제주의 활발한 전기차 보급정책에 비해 관련 산업정책은 실망스럽다. 전기차 시장이 민간으로 확대됨에 따라 관련 서비스 사업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육지 등 외부 업체의 제주 진출이 제한받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가 도내 업체를 육성한다는 취지지만 실제 현실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당초 정책적 취지와 달리 도내 기업들은 기술 개발보다는 외부 기업의 제품과 기술에 의지하며 영업 경쟁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도내 기업의 기술·제품 경쟁력 확보를 위한 규제가 오히려 물류 등 유통마진 상승과 유지보수에 어려움을 제공하는 셈이다.

결국 가격 상승 등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여기에 육지 기업들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제주의 활발한 전기차 환경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을 위한 실적과 경험을 쌓고 싶지만 주도적 참여가 어렵기 때문이다. 제주는 매년 1000만명 이상이 찾는 국제도시이자, 전기차·스마트그리드 실현에 국내 최적지다. 글로벌 수준에 걸맞은 산업 정책을 통해 다양한 에너지신산업을 창출하는 데 보다 현실적인 정책 개선에 힘써주기 바란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