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높으나 낮으나 똑같은 대책...소비자, 정유업계 모두 한숨

정부가 석유제품·LPG 가격에 국제 유가 하락 요인 반영폭을 높이라고 나서자 업계가 반박하고 나섰다. 정유사 세전 공급 가격에 이미 국제 가격 인하 요인이 충분히 반영됐다는 입장이다. 알뜰 주유소 확산, 전자상거래 활성 등 정부가 내놓은 저유가 대책에 대해서도 시장 개입으로 유가를 인위적으로 인하한 고유가 대책의 재탕으로 유가 하락에 따른 산업 대책이 아쉽다는 목소리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국제 유가 급락으로 발생한 인하 요인을 국내 석유제품·LPG 가격에 반영해 달라는 뜻을 관련 업계에 전달했다. 사실상 공급가의 추가적 인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정유 업계는 국제 유가 하락분을 충분히 반영해 추가 인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유 업계와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환율을 감안한 국제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455.2원으로 1년전보다 327.5원 감소했다. 반면 정유사의 세전 휘발유 가격은 같은 기간 877.1원에서 541.4원으로 335.8원이나 감소했다. 국제 유가보다 국내 휘발유값 하락폭이 더 컸다는 의미다.

업계는 오히려 높은 유류세로 인해 가격 인하 효과가 상쇄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현재 휘발유, 경유 판매 가격에서 세금 비중은 각각 58%, 50% 내외다. 지난해 1월 휘발유 기준 49%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기름값이 내려갈수록 세금 비중이 높아지고 인하 효과를 상쇄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실제 지난해 주유소 판매가는 1월 1887.6원에서 12월 1594.9원으로 292.7원밖에 내리지 않았다.

김문식 한국주유소협회 회장은 “유류세에 따라 휘발유 판매 가격도 내려갈 수 있다”며 “유통비용을 아무리 줄인다 해도 휘발유 값이 리터당 1300원대 이하로 떨어지긴 힘들다”고 말했다.

정부가 재차 꺼내든 알뜰 주유소, 전자상거래 활성화 카드에 대해서도 업계는 현 상황에서 경영을 악화시킬 있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석유 및 LPG 가격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알뜰 주유소 확산, 전자상거래 활성화 등 경쟁 촉진을 통해 국내 석유 가격 인하를 유도하고 가격결정 투명성을 제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11년 고유가 대책으로 제시한 가격 인하 정책을 그대로 적용한다는 의미다. 정유사의 추가 가격 인하 여력이 크지 않고 유가 하락으로 업계가 사상 최대 손실을 기록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오히려 정유, 주유소 업계 출혈 경쟁만 야기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석유협회는 이와 관련해 “업계 사정이 어려운 만큼 고유가 시대에 만들어졌던 알뜰 주유소, 전자상거래 등 유통 정책을 시장 친화적으로 전환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고유가 당시에는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격 인하 정책을 펼치는 것이 맞지만 지금은 정유, 석유화학 업계 등 유가 하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업계에 필요한 산업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