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드 태블릿(Shield Tablet)은 어쩌면 조금 억울할 지도 모를 제품이다. 이 제품은 산뜻한 느낌보다는 선 굵은 남성미를 갖추고 있다. 이전부터 이어온 디자인을 그대로 따왔지만 두께도 9.2mm로 그다지 얇지 않고 무게도 390g으로 가볍다 말하기 어렵다. 가격도 국내에 출시할 당시 30만원대로 나왔지만 요즘 워낙 값싼 태블릿이 많다 보니 단순 수치만으론 가격만 보고 인상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언뜻 평범한 듯 보이는 이 제품은 지난해 11월 비즈니스인사이더가 발표한 전 세계 태블릿 랭킹에서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뭔가 다른 게 있긴 있다.
이 대목에서 엔비디아는 다시 이것만 본다고 억울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이 제품은 “단언컨대 메탈이 가장 완벽한 물질”인 것처럼 단연코 게임을 위한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태블릿이다. 조금 의인화까지 곁들여주자면 걸어 다니는 콘솔 게임기라고 해도 좋다.
◇ 게임 성능 발군 “부드럽고 빨랐다”=생각해보면 쉴드 태블릿은 꽤 당찬 제품이다. “PC 게이밍 환경을 모바일로 그대로 옮겨 오겠다”는 구상을 30만원대 태블릿에 담았으니 말이다. 이 제품은 기존 모바일 게임 환경 외에도 PC에서나 지원하던 다이렉트X12와 오픈GL 4.5(원래 4.4였지만 업데이트되면서 4.5 지원), 주요 게임 엔진 가운데 하나인 언리얼엔진4까지 지원한다. 쉴드 태블릿은 이런 기반을 바탕으로 PC와 태블릿을 스트리밍 연결해 PC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어쨌든 터치 몇 번으로 뭐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지금 PC와 태블릿을 이것저것 연결하려는 건 무작정 쉽다고 말하긴 어렵다. 지포스 그래픽카드를 단 PC와 연결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막상 연결 버튼을 눌러보니 연결이 끊기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기기보다는 공유기 문제가 큰 것 같지만 PC와의 스트리밍 연결이 장애물을 만날 다른 확률도 있긴 있다는 뜻일 터. 하지만 그럼에도 잠시나마 연결해봤던 콜오브듀티 같은 작품을 태블릿에서 해본다는 건 꽤 매력적인 건 분명해 보인다.
앞서 설명했듯 스트리밍 연결에는 지포스 그래픽카드 같은 조건이 필요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쉴드 태블릿 자체만으로도 멋진 게임 환경을 꾸밀 수 있다. 쉴드 태블릿을 켜보면 엔비디아 실드 허브(SHIELD Hub)에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 가보면 쉴드 태블릿에 최적화된 게임을 구입할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하프라이프2다.
하프라이프. 개인적으로 하프라이프를 처음 해본 건 1990년대 말 정도였던 것 같다. 물론 그 뒤로 이 게임을 해본 적은 없지만 FPS 게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 건 분명하다. 90년대말 짱짱하던 PC에서 즐기던 이 명작 게임을 이젠 태블릿에서 즐기고 있으려니 “세월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하프라이프2 모바일 버전은 엔비디아가 독점 타이틀로 제공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보니 APK 파일을 받아 실행해보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이 게임은 쉴드 태블릿, 여기에 게임 컨트롤러가 있어야 실행할 수 있다. 어쨌든 하프라이프2를 실제로 실행해보니 끊김 하나 없이 마치 PC에서 게임을 하듯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고 반가운 일이다.
쉴드 태블릿은 별도로 구입할 수 있는 겉면 케이스를 이중으로 접어서 2단계 각도 중 선택해서 세워둘 수 있다. 게임을 할 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어쨌든 굳이 하프라이프2가 아니더라도 쉴드 태블릿은 게임에선 발군의 성능을 낸다. 중학생 아들이 쉴드 태블릿을 써보고 처음 꺼낸 말만 봐도 사실 이 제품의 특징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피파를 돌려보더니 “엄청 빠르다. 랙 같은 거 안 걸리고 화면이 너무 부드럽다”고 말한다.
그냥 빠르고 부드럽다고 하면 아무래도 감이 없으니 수치를 보면 이렇다. 안투투 벤치마크 5.5로 보면 쉴드 태블릿은 5만 4,955점이 나온다. 갤럭시노트4 같은 제품이 5만점이 안 나온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한 속도다. 게임에 특화된 제품이라고 했으니 3D마크 결과를 봐도 좋겠다. 2만 9,791점이다. 다른 태블릿 점수를 참고하기 위해 아난드테크 테스트 결과를 조금 인용해 다시 살펴보면 이렇다. 쉴드 태블릿은 3만 1,179점을 기록한 반면 갤럭시S5 1만 9,929점, 모토X 1만 9,758점, 아이폰6 1만 7,222점 등이다. 아난드테크의 테스트 중 3D 벤치마크 관련한 분야에서 쉴드 태블릿은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쉴드 태블릿이 3D 그래픽 처리 능력에서 발군이라는 건 수치만으로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직접 체험해본 감을 수치로 바꿔도 마찬가지인 것.
쉴드 태블릿의 이런 빠른 성능을 뒷받침하는 건 테그라K1이다. 케플러 코어 192개를 담은 이 제품은 ARM 코어텍스 A15 2.2GHz 쿼드코어다. 엔비디아 설명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360에 들어간 CPU보다 더 빠르단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최근 엔비디아가 발표한 테그라X1은 테그라K1보다 성능이 2배 높아졌다는 점이 놀랍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 제품이 마치 아메리칸 머슬카처럼 속도는 짱짱한데 기름 많이 먹는다는(배터리시간) 뜻은 아니다. 내부에는 5,300mAh짜리 배터리를 넣었는데 연속사용시간은 동영상 기준으로는 10시간, 게임으로 따져도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5시간 이상은 연속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쉴드 태블릿을 그럴싸한 콘솔 게임기로 만들어주는 또 다른 장치는 옵션이지만 게임 컨트롤러를 빼놓을 수 없다. 쉴드 태블릿용으로 나온 무선 게임 컨트롤러의 연결은 당연히 PC 스트리밍처럼 복잡하지 않다. 블루투스가 아니라 와이파이 다이렉트를 이용해 무선 연결하는데 엔비디아 설명에 따르면 와이파이 다이렉트가 블루투스보다 지연시간이 3분의 1 수준인 반면 대역폭은 8배에 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샘플이 하나밖에 없어서 컨트롤러는 하나밖에 연결해볼 수 없었지만 동시에 4대까지 연결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컨트롤러가 하나만 있어도 트라인2 같은 게임을 동시에 2명이 즐기는 건 가능하다. 미니HMDI 단자를 이용해 TV와 연결해서 TV 화면으로 게임을 하면서 한 명은 컨트롤러, 다른 한 명은 태블릿 터치를 이용해서 게임을 해도 된다. 처음부터 태블릿용으로 나온 게임은 그냥 터치로 하는 게 편하긴 하다. 하지만 PC 스트리밍을 하거나 하프라이프2처럼 쉴드 태블릿에 최적화한 기존 PC 게임 스타일은 확실히 컨트롤러 쪽이 편하다(하프라이프2는 컨트롤러 없으면 실행할 수 없기도 하다). 컨트롤러 자체는 엑스박스용 등 기존 콘솔 컨트롤러와 구조가 같아서 이질감 없이 곧바로 즐길 수 있다.
쉴드 태블릿은 1920×1200 풀HD 해상도에 픽셀밀도 275ppi를 지원하는 IPS 디스플레이를 달았다. 화면 자체도 반응속도가 빠르고 깔끔하지만 미니HDMI 1.4b 단자를 이용해 TV와 1080p로 연결하면 진짜 콘솔 게임기로 게임을 즐기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물론 4K 레디라고 되어 있긴 한데 사실 이건 4K 해상도를 30프레임으로 볼 수 있는 것이어서 그냥 참고 수준으로 생각하는 게 좋겠다.
◇ 펜 잘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태블릿=쉴드 태블릿은 게임 외에도 사실 선택받을 만한 요소를 하나 더 갖추고 있다. 삼성전자 제품 외에 스타일러스펜을 제대로 갖춘 몇 안 되는 태블릿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펜촉은 이전 모델과 마찬가지로 사선 형태로 생겼다. 화면과 닿는 부위에 따라 혹은 세기를 달리 하면 필압을 감지하는 것이다. 마치 실제 펜을 살짝 쓰거나 눌러 썼을 때의 차이와 같은 느낌을 그대로 준다.
엔비디아는 쉴드 태블릿으로 쓸 수 있는 그림 그리기 앱인 대블러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대블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레시 페인트를 개선한 앱이라고 한다. 이 앱을 이용하면 일반 그림은 물론 수채화나 유화 같은 것도 그릴 수 있고 GPU 가속을 이용한 그래픽 작업까지 할 수 있다. 심지어 수채화에서 물감이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효과까지 그대로 재현한다.
하지만 사실 누구나 작품을 그리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론 라이트(Write)나 에버노트를 이용해서 갤럭시노트처럼 편하게 필기를 할 수 있다는 쪽만으로도 만족감을 주기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또 스타일러스펜을 뽑으면 곧바로 다이렉트스타일러스 런처라고 불리는 런처가 나오면서 대블러와 라이트, 에버노트 중 원하는 앱을 곧바로 실행할 수 있게 하는 세심함도 엿보인다.
쉴드 태블릿은 확실한 장점을 갖춘 반면 몇 가지 소소한 아쉬움도 있다. 버튼이 잘 눌리지 않는 문제도 조금 거슬릴 수 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게나 두께는 잘 빠졌다는 인상과는 거리감이 조금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전 모델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마이크로USB 단자 부위가 깔끔하게 끼워진다는 느낌이 덜한 것도 성능과는 관계없지만 아쉽다면 아쉽다.
쉴드 태블릿의 다른 장점이라면 지속적인 업데이트 지원이 아닐까 싶다. 이 제품은 지난해 11월 안드로이드 5.0 롤리팝 업데이트를 지원한데 이어 5.0.1 업데이트도 실시했다. 꾸준히 업데이트를 진행해 카메라 기능을 늘리거나 오픈GL 4.5 지원 등 기능 보완을 계속 한다.
이 제품이 간택(?)받을 이유 하나는 분명하다. 게임이다. 속도는 단연 탁월하다. PC 스트리밍이나 (국내에선 잘 안 쓰지만) 트위치 같은 게임 생중계도 가능하고 모바일 게임에선 맛보기 힘든 화려한 그래픽 효과를 곁들인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트라인2 같은 게임을 해보면 조명을 비롯한 각종 3D 그래픽 효과가 콘솔이나 PC 게임 뺨칠 수준이라는 점에 놀라게 된다. 전면 스테레오 스피커 역시 빵빵해 몰입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전자신문인터넷 테크홀릭팀
이석원기자 techhol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