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KAIST에서 정년을 마치고 퇴임식에서 지난 삶을 회고하며 공언한 게 있다.
‘마지막 인생 3막’에서는 은퇴과학기술자들이 우리나라 개발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해방 다음해부터 6·25를 거쳐 유학 후 귀국까지의 성장과 교육생활 33년이 인생 1막이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과학기술처, KT, KAIST 정년까지의 본격적인 사회 활동 33년이 인생 2막이었던 셈이다.
‘행복한 사람’이란 ‘즐거운 일’로 바쁜 사람일 것이다. ‘즐거운 일’이란 자신이 잘할 수 있고, 가능하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를 산업 불모지에서 선진국 대열로 올려놓은 과학기술인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나라의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수준인 개도국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정책, 적정기술개발, 교육연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필자가 개도국의 과학기술 수요를 발굴하고 우리나라 고경력 과학기술자들의 경험을 엮어 대한민국의 성공경험을 개도국에서 다시 꽃피우도록 하자는 ‘앙코르코리아 사업 (www.encorekorea.com)’을 시작한 배경이다.
앙코르코리아를 통해 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로 즐겁게, 바쁘게 지내고 있으니 그런 면에서 ‘행복한 사람’이다.
사업 착수 3년이 지난 지금 에쓰-오일과학문화재단의 마중물 지원에 힘입어 이 사업에 뜻을 같이하는 1000여명의 은퇴 고위공무원·연구소 및 산업계 은퇴 과학기술자들을 에티오피아, 카자흐스탄, 몽골, 페루, 인도네시아 등에 파견했다. 녹색기술센터(GTC)와 협력해 녹색기술의 해외 확산·보급에도 참여하고 있다.
2012년 가을에는 대학동기가 총장으로 있는 에티오피아 아다마 과학기술대학을 방문했다. 앙코르코리아가 대학 내 에티오피아의 현안인 시멘트 기술의 자립을 위한 연구소설치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2013년에는 미래부·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전직 쌍용시멘트 전문가 4명과 함께 여러 차례 현지 대학을 방문했다. 현지교수의 국내 초빙 연수 등을 통해, 핵심기술전수, 인력양성방안, 기술센터 중장기계획 수립 등을 지원했다.
2014년 6월이 되어선 현지 대학 최초로 시멘트기술 연구소까지 개소했다.
앙코르코리아는 에티오피아 대학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현지의 유수 시멘트 제조회사로부터 기술자립지원 과제를 위탁받았다. 에티오피아의 산업부에서도 시멘트기술개발 중장기 계획 수립과제와 화학공업 등 인력개발 중장기 계획 수립과제도 위탁받아 성공리에 수행 중이다.
짧은 기간 단일 과제 성공이 여러 개의 위탁 과제 수주로 이어진 것은 앙코르코리아 전문가들이 에티오피아 대학, 산업계, 그리고 현지정부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앙코르코리아는 국내에서도 2012년부터 한국에 온 유학생 150여명을 친한파, 지한파 리더로 키우는 ‘글로벌 유학생 멘토링 포럼’을 정기 개최하고 있다.
2013년 서울, 경기, 인천교육청 추천을 받아 초등학교 5, 6학년 과학영재학생 60명으로 시작한 초등과학영재 아카데미사업은 지난해부터 미래부·한국과학창의재단 지원이 보태져 중학교 1학년 40명과 초등학생 80명, 학부모, 20여명의 전문 멘토 교수들로 구성된 초·중등 과학영재 아카데미로 발전했다.
앙코르코리아는 매달 과천과학관, 경기테크노파크, KIST 등의 기관 탐구활동과 송암스페이스센터, 여름방학기간 미국과학관, 겨울방학기간 일본 과학관 견학과, 부산의 한국과학영재학교와 대전의 카이스트(KAIST) 영재교육원 1박 2일 탐방행사 등을 통해 세계를 이끌어갈 창의적인 꿈나무를 키워 나가고 있다.
바람이 있다면 이 사업이 1∼2년 검증을 거쳐 전국단위로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동원산업에서는 폴리테크닉 대학생들이 생활기술영어와 리더십을 갖추면, 해외에 좋은 일자리와 세계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앙코르코리아와 함께 창원의 폴리테크닉 7대학에 2개 강좌를 2년째 열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에서도 시니어 과학자들의 개도국 지원 활동을 권장하는 과제를 많이 발굴, 지원하고 있다.
필자는 대한민국을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은퇴과학기술자 만이 갖고 있는 고귀한 경험과 네트워크가 국내뿐만 아니라 개도국에서도 대 환영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새해에는 국내외에서 바쁘게 봉사하면서 멋진 인생 3기를 즐기는 ‘앙코르 코리아’ 과학기술인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강민호 앙코르코리아사업단장(전 KAIST 부총장) minhokang@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