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6개월 사이 국제유가가 반토막 나면서 일부 산유국이 금융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러시아는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미국을 제외한 유럽·일본 등 세계 주요국도 올해 성장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며 우리나라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 후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세계 경제까지 흔들리며 불안감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국제유가 하락과 자유무역협정(FTA) 영토 확대가 우리나라에 ‘기회’며, 구조개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면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하지만 현실을 너무 긍정적으로 보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대응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갈피 잡을 수 없는 세계경제
올해 세계 경제는 ‘완만한 성장’을 할 것이라는 게 주요 전문가의 예측이다. 특히 미국이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다. 지난해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한 미국은 경기 회복세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세계은행(WB)은 미국 경제성장률이 작년 2.4%에서 올해 3.2%로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기획재정부도 “미국은 고용시장이 호조를 보이고 있으며, 소비·투자 등 민간 부문을 중심으로 견조한 성장세가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은 성장이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유로존 경제가 심상치 않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유로존이 2008년 이후 세 번째 경기침체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작년 12월 유로존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0.2% 하락하며 디플레이션 우려가 더욱 커졌다. 기재부는 유로존은 회복세가 매우 미약하고 저물가가 지속되는 등 당분간 지지부진한 경기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중국도 기대만큼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미국 양적완화 종료에 따른 금리 인상으로 신흥국이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금리 인상으로 상당한 자금이 신흥국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제유가 하락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도 미지수다. 국제유가(서부텍사스유 기준)는 작년 6월 배럴당 106.9달러까지 올랐지만 반년 만에 5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국제유가 하락은 세계 석유 공급 증가, 수요 증가세 둔화, 달러화 강세 때문으로 분석했다. 북미 지역 원유 생산이 지속 증가했으며, 석유수출국기구(OPEC) 원유 생산량도 작년 하반기부터 증가세로 전환했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 경제성장이 둔화하며 석유 수요 증가세가 약해졌다는 평가다.
유가하락은 대체로 세계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다. 우리나라와 같은 원유 수입국은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유가 하락은 세계 경제 성장률을 최저 0.3%포인트, 최고 0.7%포인트 높여주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가하락은 디플레이션 심화로 이어질 수 있고, 나라마다 사정이 달라 무조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가하락에 따른 원자재 가격 변동도 또 다른 변수다. 22개 원자재 가격을 나타내는 블룸버그 원자재지수는 12일 기준 101.95를 기록하며 1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특히 글로벌 경기의 선행지표인 구리 가격이 폭락하며 경기둔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나친 낙관 ‘경계하고’ 대응 ‘강화해야’
정부의 대외 경제환경평가는 대체로 낙관적이다. 특히 국제유가 하락에 우려보다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계속되는 FTA 체결·발효도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국제유가 하락은 우리 경제에 큰 호재”라며 “(저유가가) 실질소득 증대로 이어져 오히려 수요를 보강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5개 국책 연구기관이 전망한 대로 올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평균 63달러 수준을 유지하면 약 30조원의 실질소득 증대 효과가 있고, 원유 수입 비용만 300억달러가 절감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국제유가 하락은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가 (부정적인 효과보다)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와 이 총재의 발언은 국제유가 하락이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인식한 것이다. 실제로 작년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0.8% 상승에 그치며 디플레이션 우려는 점차 심화되는 상황이다. KDI는 우리나라도 일본과 유사한 형태의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를 권고한 바 있다.
이 같은 의견에도 한국은행은 작년 10월 기준금리를 2% 수준으로 내린 후 3개월 연속 동결을 결정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1분기 내 기준금리 추가 인하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평가가 엇갈리며 업계에서는 정부의 지나친 낙관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만큼 우리나라도 결코 예외는 아니라는 평가다.
정부의 경제성장률 전망도 너무 긍정적인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3.8%로 제시했다. 기존 전망치인 4.0%보다 낮춘 것이지만 여전히 국내외 주요 연구기관의 전망보다 높다. 실제 KDI는 당초보다 0.3%포인트 낮춘 3.5%를 제시했다. KDB대우증권은 3.5%, 한양증권·신한금융투자·현대경제연구원은 각각 3.6%로 전망했다.
FTA 효과 낙관을 두고도 우려가 제기된다. 최 부총리는 유가하락과 더불어 FTA를 우리 경제에 있어 2대 호재로 꼽았다. 하지만 FTA가 양국이 서로 ‘주고받는’ 협상 결과라는 점에서 부정적 효과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세계 경제 변화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가하락을 반영해 공공요금을 인하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을 비롯한 공공요금은 요지부동이거나 오히려 인상이 예상된다. 국제유가가 반토막 났지만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세금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 때문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석유제품 가격 인하 압박에 나섰지만 업계 반발에 직면한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경기가 심리적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정부의 낙관적 평가가 도움이 될 수는 있다”면서도 “전망과 별개로 위기에 대비한 면밀한 정책 추진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