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업계 1위 SK이노베이션이 연이은 악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을 거둘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신사업으로 추진한 태양광 사업이 청산 절차를 밟고 계열사와 공동 투자한 싱가포르 정제 시설은 가동한지 넉달 만에 설비 교체를 이유로 가동을 중단했다.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고유가 상황만 예측하고 배팅한 결과가 아니냐는 진단이 따른다. 하나같이 유가 상승에 힘을 발휘하는 사업에만 투자 했다가 최근 국제 유가 급락으로 손실이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37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회사는 지난해 3분기까지 238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4분기 유가 하락으로 인해 4분기 들어 6000억원 규모의 재고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4분기 연결 기준 영업손익은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정유 부문 손실을 만회할 ‘효자’사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사는 정유 부문 편중한 사업 구조 다각화를 위해 신사업 투자에 활발하게 나섰지만 대다수 사업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 고유가에 대비한 사업 일변도 전략이 국제 유가 하락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SK종합화학, SK건설, SK가스 등 SK그룹 3개 계열회사가 지분 30%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는 싱가포르 주롱아로마틱콤플렉스(JAC)의 가동을 중단한 것은 대표 사례다. JAC는 콘덴세이트(초경질원유)를 기반으로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최근 콘덴세이트 가격이 상승하고 유가는 폭락하면서 원가 경쟁력을 상실했다. 급기야 최근 공장 가동을 정지하고 나프타 등 다양한 원재료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정 개선에 들어갔다. 콘덴세이트와 다른 원료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공정이 일반적인데도 고유가에만 대비해 손실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SK이노베이션의 정제 능력은 하루 80만배럴 수준이다. 국내 전체 정제 능력 40%에 달하는 수치로 유가 하락으로 인한 재고손실 규모도 가장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저유가에 대비한 시나리오 부재가 아쉬운 대목이다.
탈석유 사업으로 지목한 태양광, 이차전지 사업도 유가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크게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SK TIC와 총 7600만달러를 투입해 박막 태양전지 제조 기업 헬리오볼트 지분 47.9%를 확보했다가 최근 시황부진으로 매각에 나섰다. 하지만 박막태양전지 시장이 열리지 않은데다 유가마저 하락하면서 태양광 사업에 나설 인수 주체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청산절차를 밟기로 했다. 이로 인해 손실은 600억원대에 달한다.
이차전지 사업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독일 컨티넨털과 이차전지 배터리와 관련된 합작사업을 청산한 뒤 중국 합작법인 ‘베이징 BESK 테크놀로지’를 통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난해 7월 2000여대 규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 뒤 아직까지 성과가 없는 상태다. 에너지저장장치(ESS)도 현재까지 수주 실적이 1㎿ 남짓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서산 배터리 제조 라인의 가동률은 최근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가가 장기적으로 지속 상승할 가능성이 높지만 현재 저유가 추세 또한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며 “SK이노베이션의 정제 규모가 크고 다수 사업이 고유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니 동종 업계보다 손실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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