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시장에 이른바 ‘화웨이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다. 화웨이가 국내 통신 3사 기간망(백본)을 대부분 잠식한 데 이어 중·하위 네트워크 레벨로 사업 범위를 넓히면서 국산 장비업체가 시장을 빼앗기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가격경쟁력뿐만 아니라 기술력도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선 화웨이가 독주 체제를 구축하면서 자칫 우리나라 네트워크 산업이 중국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고조됐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통신사가 실시한 차세대 기간망 장비 사업자 선정에서 화웨이가 연이어 사업을 수주했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해 말 네트워크 단위 최상위 레벨 장비인 광전송네트워크(OTN) 공급 업체로 화웨이를 선정했다. SK텔레콤은 화웨이와 시에나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조만간 계약서에 서명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해 하반기 LG유플러스도 화웨이를 OTN 공급 업체로 선정한 바 있다.
KT도 올해 안에 차세대 기간망 사업을 발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KT 사업 역시 화웨이가 수주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KT는 현재 백본망 장비인 재설정식광분기(RoADM)에 화웨이 장비(일부 코위버)를 쓰고 있다. RoADM은 발전단계상 OTN 직전 장비다.
몇 테라바이트 용량을 갖춘 기간망은 통신사업자가 네트워크 신호를 발생하는 원천 시스템이다. 다른 제조사의 분배망(에지, 백본 아래 중간 레벨) 장비와 호환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효율성을 고려하면 분배망 장비도 결국 기간망 공급사 제품으로 교체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화웨이는 현재 국내 대부분 통신사에 RoADM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전체 점유율은 50% 이상이다. 용량 면에서 분배망 레벨인 패킷전송네트워크(PTN) 분야에서는 SK텔레콤, LG유플러스에 제품을 공급 중이며, 역시 50% 정도를 점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화웨이의 최대 무기는 가격경쟁력이었다.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경쟁사 대비 30~40%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격을 경쟁사와 10~20%밖에 차이가 안 나는 수준으로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품 성능이 글로벌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이제는 가격을 크게 낮추지 않아도 충분히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가격경쟁력과 기술력을 모두 갖춘 화웨이는 통신사 외 한국전력, 강원소방 등 공공 분야로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미 대기업과 금융권을 제외한 많은 분야에 구축 사례를 갖고 있다. 국가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 사업에도 강력한 참여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특히 다중서비스지원 플랫폼(MSPP) 등 국산 장비업체의 텃밭에서도 경쟁을 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향후에는 네트워크 최하위 레벨인 가입자망(액세스망) 장비시장까지 화웨이가 접수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통신 장비업체 한 임원은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한국 통신사의 통신망은 중국 장비회사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향후 국내 통신장비 시장에서 고용창출과 경쟁력 확보를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가격보다는 기술력과 안정적 서비스를 우선해 장비를 선정하고 국산 업체가 적정한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표]통신사 화웨이 장비 사용(선정) 현황
자료:업계 종합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