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전북 군장 국가산업단지 내 성일하이텍 공장. 제법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거대한 자루가 연신 운반되고 있었다. 안에는 휴대폰·PC에서 나온 다 쓴 이차전지가 가득 담겨 있다. 홍승표 사장은 “밖에서는 폐기물이지만 우리에게는 중요한 원료”라며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폐 이차전지를 구입해 들여오고 있다”고 말했다.
성일하이텍은 전자 폐기물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리사이클 전문기업이다.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차전지 리사이클 사업으로 선전하고 있다. 지난 2010년 580억원이었던 매출은 다음해 1100억원으로 수직 상승했고 원자재 가격이 폭락한 지금도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회사가 이차전지 리사이클에 뛰어든 것은 지난 2005년께다. 전자·디스플레이·태양광 사업 고객사가 폐업하며 원료 수급이 어려워지자 공장을 놀리는 일도 잦아졌다. 당시 경영진은 이차전지에 주목했다. 세계 최대 이차전지 기업들이 포진한 국내에서 원료 확보가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지난 2011년 180억원을 투자해 연간 9000톤의 폐 이차전지를 처리해 황산코발트, 니켈메탈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구축했다. 폐 이차전지를 활용해 다시 이차전지 소재를 생산하는 기업은 국내에서 유일하다. 홍 사장은 “이차전지가 소재로 탈바꿈해 자원순환 생태계가 구축된 사례”라며 “리사이클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순도가 높아 호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성일하이텍은 이차전지를 비롯한 다양한 폐기물에서 금·은·팔라듐·주석·니켈·코발트·망간·루테늄·인듐 총 9종의 금속을 추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총 16건의 특허를 등록했고 6건을 출원했다. 삼성물산 상사부문이 성일하이텍 지분 일부를 매입할 정도로 기술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올해는 진입장벽이 높은 신사업에 진출해 제2의 도약을 이룬다는 목표다. 지난해 매출과 순이익은 각각 960억원, 30억원. 매년 1000억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지만 최근 영업환경은 호락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홍 사장은 “전자제품 크기가 작아지면서 스크랩과 회수할 수 있는 금속량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면서 “향후 원료 확보가 어려워 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전문 역량이 필요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유·석유화학 기업이 배출하는 촉매에서 은·백금·팔라듐을 추출하는 사업에 나서 것도 이런 배경이다. 성일하이텍은 최근 10억원을 투자해 촉매에 포함된 금속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오토샘플러를 도입했다. 내년에는 현 공장 옆 부지에 촉매 리사이클 공장을 증설해 본격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더불어 하반기 황산코발트·니켈 생산능력도 각각 연산 6000톤, 720톤까지 늘릴 예정이다. 최근 말레이시아 클랑 현지에 연간 3000톤 규모 이차전지 전 처리 공장을 준공해 원료 수급에도 숨통이 트였다. 중국·인천공장에서 인쇄회로기판(PCB) 등 전자 폐기물을 처리하고 군산을 이차전지, 촉매 리사이클의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그림이다. 올해 처리 물량이 늘어나면 전년 대비 순이익도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홍 사장은 “회사가 지금까지 양적 성장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기술·인력 확보에 주력할 때”라면서 “리사이클 강소기업으로서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경쟁력을 향상해 나가는 것이 올해 목표”라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