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첩보 영화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영화 007 시리즈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가운데 하나는 본드걸과 본드카다. 제임스 본드가 타는 자동차로 불리는 건 애스턴마틴. 제임스 본드와 애스턴 마틴은 마치 동의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실제로 007 차기 시리즈인 007 스펙터(007 Spectre)에도 애스턴마틴이 제임스 본드를 위해 DB10(사진 위)을 제작한다.

애스턴 마틴과 제임스 본드와의 관계는 꽤 오래됐다. 007 시리즈 가운데 명작으로 꼽히는 007 골드핑거에서도 애스턴 마틴의 DB5(사진 맨 아래)가 나온다.

하지만 원작 소설 첫 작품에서 탔던 차는 벤틀리 블로워(Bentley Blower)였다. 원작자인 이안 플레밍이 007 시리즈 1편인 카지노로열을 간행한 건 1953년이다. 여기에서 제임스 본드는 1931년 제작된 4.5리터짜리 벤틀리 블로워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된다. 소설에서 제임스 본드가 모는 벤틀리는 그의 유일한 사적인 취미라고 나온다. 제임스 본드는 소설 속에선 1933년 이 차를 구입해 군복무를 하던 제2차세계대전 동안에는 차고에 보관해왔다.

이 차는 차량 무게는 2톤이며 르망24를 위해 제작한 차량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배기량은 4.5리터에 직렬 4기통 엔진을 이용해 240마력을 낸다. 기어박스는 4단 수동이지만 구조가 단순하고 튼튼한 대신 기어를 변속할 때에는 운전자가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하는 등 조작은 쉽지 않다. 최고속도는 190km/h 전후로 당시로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 차량은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단 55대만 제작됐다고 한다.
그런데 왜 제임스 본드는 벤틀리에서 애스턴 마틴으로 갈아타게 됐을까. 영국 BBC의 유명 자동차 프로그램인 탑기어에 따르면 원작자인 이안 플레밍은 한 독자로부터 제임스 본드를 위해 좀더 품위 있는 차를 택하는 게 어떻겠냐는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또 편지를 쓴 팬은 애스턴마틴 DB3이 어떻겠냐며 구체적으로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안 플레밍은 1959년 출간한 007 골드핑거부터 이 제안에 따라서 제임스 본드의 차를 애스턴 마틴으로 바꿨다. 이후 1964년 영화 버전이 제작되면서 당시로는 최신 모델인 DB5를 자연스럽게 택하게 된 것이다. 보통 이런 차량이 등장하면 단순한 PPL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임스 본드가 애스턴마틴을 타게 된 이유는 팬의 제안 때문이다.
전자신문인터넷 테크홀릭팀
이석원기자 techhol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