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지난주 5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지난 23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3월 인도분 선물가격은 배럴당 45.59달러에 체결됐다. 지난 2009년 3월 11일 이후 최저치다.
WTI 선물가격은 주간 기준으로 지난 17주 동안 15주나 하락했다. 주요 산유국의 감산 불가 방침과 미국 원유 재고 급증 여파로 내림세가 이어지는 상태다.
현재 미국의 원유 재고 물량은 3억8790만배럴에 달한다. 이는 8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경기 부진으로 유럽과 아시아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유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유가는 지난해 6월과 비교하면 현재 60%나 낮아진 상태다.
유가는 천연 가스, 난방유, 유연탄 등 에너지 자원 가격 동반 하락이라는 연쇄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당장은 수송·난방·전력 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소비자에게 긍정적이다. 지금과 같은 유가 하락 속도를 감안하면 1∼2년간 각 가구의 소비 여력이 1000달러(108만원)나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에 신재생에너지·수요관리 등 고유가 상황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에너지신산업은 일시적인 부침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발전 연료인 천연가스 현물 가격은 유가와 동반 하락하고 있다. 호주산 액화천연가스(LNG)가 주로 공급되는 아시아 시장에서 LNG 현물 인도분 가격은 최근 100만BTU(천연가스단위)당 9.70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호주산 LNG 수출 계약가인 16~17달러에도 한참 못 미친다. 장기 공급 계약에 기반을 둔 국내 LNG 도입 가격도 유가 하락 영향으로 점차 낮아질 전망이다. 이는 국내 발전사의 발전 단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에너지 신산업이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도 에너지 신산업 투자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유가 하락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고 기후 변화 등 환경 규제에 대응하려면 필수 준비기 때문이다.
강정화 수출입은행 선임연구위원은 “화석연료 가격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안정적이고 청정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면서 “미국·중국 등이 유가 하락에도 신재생·전력 효율 향상에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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