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 시장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박스피(박스권에 갇힌 코스피)’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 미국과 일본이 연초대비 각각 12%, 8%씩 상승하는 사이 국내 증시는 정체일로다. 이달 중순까지 수차례 1890선을 하향 돌파한 코스피 지수는 1930선에서 연이은 대외악재로 시름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전망도 어둡다. 희망은 있을까.
◇잇따른 ‘대외악재’ 수난의 1월
연초 국제 유가 급락과 그리스 유로존 탈퇴 우려로 1900선을 밑돌던 지수는 스위스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소식에 연이어 1890선을 내줬다. 1월 말 소폭 오름세를 보였지만 마지막 주인 이주 첫 거래일에도 그리스 총선 여파로 1930선에서 약보합 마감했다. 그리스 총선에서 급진좌파 시리자당이 압승해 유로존 갈등 구도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훈풍도 힘을 쓰지 못했다.
회복세로 들어서는가 싶더니 실적시즌에 막혔다.
지금껏 나온 대형주 성적표와 금융가가 내다보는 실적 전망은 밝지 않다. 대외 악재가 엎친데 실적 우려가 덮친 모양새다. 4년 만의 영업이익 최저치를 기록한 현대차 실적 쇼크에 기아차까지 쇼크를 이어간 이후 LG화학도 악화된 성적표를 내놨다. 삼성SDI와 현대위아도 시장 컨센서스에 못 미친 실적으로 실망감을 안기는 등 국제 유가 하락이 수출기업에도 타격을 주면서 어닝 쇼크 실적 발표가 잇따른다. 화학·철강·기계·조선·건설 분야 업종 실적 예상치 하향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주 초 한국투자증권은 포스코와 현대제철 목표주가를 각각 44만원과 8만9000원으로 12%와 11% 내렸다.
지난 22일까지 롯데하이마트(-23.56%)를 비롯해 삼성SDS(-22.49%), 현대글로비스(-21.96%), 제일모직(-21.52%), 삼성카드(-16%), GS홈쇼핑(-13.69%) 등 업종별 대표주 하락세는 두드러졌다. 수출형 제조업이 휘청하며 대형주 약세는 이어진다. 국내 주요 10대 그룹의 상장사 시가총액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감소했다. 10대 그룹 중 올 들어 현대중공업그룹(-7.23%), 롯데그룹(-5.14), 한화그룹(-4.63), GS그룹(-3.28), 한진그룹(-2.76), 현대차그룹(-2.17), 삼성그룹(-0.79) 등 7개 그룹 시가총액이 줄었다.
◇2015년 증시 전망 ‘먹구름’
국내 주식시장의 가장 큰 변수인 대외경제 여건도 밝지 않다. 미국의 성장세 주도에도 유럽과 일본, 중국의 잠재적 위협이 도사리고 있어 주식시장의 회복을 예단하기 쉽지 않다. 국내외 전문가의 거시 경제 성장률 전망치로 봐도 주식시장이 따로 떨어져 큰 폭의 개선을 보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유가 급락은 1월에도 여전한데 이어 2월에도 반등 가능성이 낮다.
지난 26일 열린 ‘2015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업 전망 세미나’에서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은 향후 인상경로와 막대한 초과 유동성에 따른 전례없는 금리 조절수단으로 사용되면서 유럽의 상반된 통화정책 기조 등으로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유가하락으로 원유 수출국의 대외신인도가 하락하고 에너지 관련 금융상품 위험도는 높아져 투자자의 위험회피 성향이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신흥국은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와 원자재 가격하락 등으로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둔화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과 자원수출국에 파급효과를 미치는 가운데 미국 금리인상과 맞물려 세계 경제의 위협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유가하락도 단기적인 신흥국 금융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요 변수인 기업 실적도 어둡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애널리스트 전망에 근거한 올해 순이익은 94조원 수준이다. 올해 코스피 상장사 순이익이 지난해 대비 5.7%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장 중요한 변수인 기업 실적이 5.7%의 소폭 개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반적 주가가 크게 변화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예측했다. 유럽과 중국의 기업매출 증가율도 물가 지표 하락과 더불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정책 효과 있을까
2011년부터 이어진 개인 투자자의 감소와 거래대금의 부진이 지속되면서 주식시장의 참여자 관점 활성화 여부도 불투명하다. 코스피 시장의 주가가 박스권에 머무르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줄어들고 있는 거래대금은 일일 평균 4조~5조원에 그치고 있다.
거래대금 감소가 진정세 추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신규 투자자 유입 제한 △개인 투자자의 노령화 진행 △개인 투자자 배제 등 요인을 거래대금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의 실효성은 미지수다. 가격제한폭(±30%) 확대 등 시장의 기대를 비켜간 ‘주식시장활성화 방안’은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거세다. 모험자본의 형성-투자-회수-재투자 선순환을 강화하겠다는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등 정부·공공의 자본시장 정책 실효성이 관건이다. 증권 거래세 인하 등 세제 지원과 파생상품 적격 개인투자자 자격 완화, 증권사 콜 차입 허용 등 주식시장활성화 방안에서 배제된 업계 숙원 사항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황영기 차기 금융투자협회장의 향후 추진력도 이목을 끈다.
신인석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업계는 여전히 금융 규제의 부족한 점을 체감하고 있으며 개발경제 시대를 지나오면서 정부가 시장과 산업을 직접 관리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잠재돼 패러다임 변화를 지체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위험 투자와 혁신이 아니라 사고 및 부실방지, 예금자 보호를 우선하는 은행 산업의 규제 감독 철학이 자본시장에도 반영돼 발전을 저해하고 있으며 자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 2015년 일별 코스피 지수 (자료:한국거래소)
표. 아시아 국가 외국인 순매수 동향 (자료:삼성증권, 블룸버그, 단위:백만달러, 1월 22일 기준)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