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꿔라, 꿈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얘기지만, 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구원장이 새해 마음을 다잡아 연구원들의 분발을 촉구하며 내놓은 화두다.
지난해 원자력연구원은 연구용원자로 기술을 사상 처음 유럽에 수출했다. 글로벌 원자력 기업인 프랑스 아레바(AREVA)와 독일 뉴켐(NUKEM), 러시아 니켓(NIEKET) 컨소시엄을 제치고 네덜란드 연구용 원자로 개선사업을 수주했다. 지난 2009년 UAE 원전 수출과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수출에 이어 5년 만에 다시 터진 ‘대박’이다.
하지만 원자력연구원은 크게 자랑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이어 국내서 터진 원전비리, 지난 연말 원전 해킹 등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이어 큰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괜스레 눈치가 보이고 다들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 원장의 꿈 얘기에는 ‘이제는 훌훌 털고 일어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뛰어 보자는 것이다.
올해는 네덜란드의 신규 연구용 원자로 건설사업인 ‘팔라스 프로젝트(Pallas Project)’ 발주가 기다리고 있다. ‘팔라스’는 사업규모만 5억유로(약 6700억원)에 이른다. 원자력연구원은 조만간 이를 수주하기 위한 사업 전담팀을 꾸리고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연구소기업 성과 및 향후 설립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지난 2004년부터 현재까지 3개의 연구소 기업이 설립됐다. 그런데 이들 3개가 지난 2013년 기준으로 특구 내 연구소기업 매출의 70%나 차지한다. 왜 그런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만큼 시장 성공 가능성을 따져보고 전략을 잘 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콜마비앤에이치와 서울프로폴리스, 듀켐바이오연구소가 설립됐다. 서울프로폴리스는 원자력연구원이 21.1%의 지분을 갖고 있고, 듀켐바이오연구소는 38.6% 지분을 갖기로 하고 기술을 출자했다. 이들 기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엔 이붕소마그네슘(MgB2) 초전도 선재 제조기술을 삼동에 기술이전했다. 현재 연구소기업 설립 실무합의서까지 작성한 상태다. 오는 7월 연구소 기업이 만들어질 것이다.
사실 삼동은 전력코일 전문생산업체로서 연매출이 1조원인 중견기업이다. 어느 정도 시장을 갖고 있는 기업에 기술을 얹었기 때문에 엄청난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
-창조경제 성과를 내는 것이 올해 큰 이슈다. 연구소기업 1호인 콜마비앤에이치가 3일 코스닥에 상장한다. 연구원들의 인센티브에 대한 기대감도 큰 것으로 아는데.
▲콜마비앤에이치는 지난 2004년 설립한 연구개발특구 제1호 연구소기업이다. 원자력연구원구원이 기술을 출자했다. 이 회사는 화장품과 기능성건강식품을 만드는데 지난해 매출이 1700억 원, 고용인원이 136명이다.
2월 3일 상장되면 연구원이 지분을 매각하게 된다. 지분은 18.2%다. 상장가에 따라 연구원들에게 인센티브가 돌아가는데 대략 1200억원으로 계산하면 몇몇 개인에 40억원 정도 돌아가지 않을까 예상한다.
기업이 성공하기까지는 기관의 마케팅과 홍보 노력도 엄청나게 크다. 그런 점을 감안해 인센티브가 결정될 것이다.
-연구소기업 설립이나 운영의 애로나 개선해야 할 사항이 있나.
▲원자력연구원구원은 주로 합작투자방식의 연구소기업을 설립하고 있다.
연구소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기술과 파트너십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이를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연구원 내부적으로는 우수기술 발굴 프로세스 개선과 시드(SEED) 과제 발굴을 중점 추진할 계획이다.
또 정부나 외부 전문기관과 협력해 경영능력과 자본을 갖춘 우량 기업을 발굴하고, 공동연구센터 설립 등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연구용 원자로 및 중소형 원전 수출 계획은?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 연구용원자로 개선사업(OYSTER)`,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JRTR) 건설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다. 아울러 팔라스 등 연구로 추가 수출 및 중소형 원자로 수출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다.
JRTR는 지난 2013년 8월 건설허가 획득 이후 현재 시공률이 75%다. 올해 중반 시운전 계획을 완료한다. 200건 이상의 시운전 절차서를 작성할 것이다.
교육도 있다. 30여명의 요르단 운영요원을 훈련시킨다.
‘OYSTER’사업은 오는 3월 말까지 기본설계를 완성하고 원자로 변경 및 신규설비에 대한 안전성 분석을 끝낼 것이다. 네덜란드 규제기관의 인허가 업무도 수행할 예정이다.
중소형 일체형 원자로 ‘SMART’는 안전성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한 완전피동안전계통, 중대사고 대처 설계 접목 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3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 원자력·재생에너지원(KACARE)과 체결한 기술협력 협약을 바탕으로 연구로 및 SMART 기술 수출을 위한 공동 타당성 조사를 실시한다. 말레이시아 등에는 수출을 추진한다.
-원 내 방폐물 관리 및 처분 계획을 말해달라.
▲원 내에는 국가 원자력 연구개발 업무 수행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한다. 거의 중·저준위 수준이다.
폐기물은 대부분 극저준위여서 환경오염 및 주민 피폭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방사성폐기물은 대전에 1만9635드럼, 서울에 763드럼이 있는데 대전은 저장률이 50~60%, 서울은 13.2%에 불과하다.
저장시설에 여유가 많이 있지만 조만간 경주 방폐장으로 보낼 것이다. 올해는 연간 800드럼 정도를 옮길 계획이다.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의 수명은 어떤가.
▲국가대형연구시설인 하나로는 올해가 가동 20주년이다. 기초연구, 원자력 연구개발, 동위원소 생산, 전력반도체 소자 생산 연구 등에 활용돼 왔다.
올해는 기장 연구로에서 활용할 의료용 동위원소 생산 기술 실증을 완료할 계획이다. 또 2014년 발족한 중성자빔 산업응용 협의회 활동을 통해 기술 개발에 중성자 이용 확산, 산업체 지원, 중소기업의 애로 기술 지원 등을 펴나간다.
하나로의 수명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중성자에 조사되는 원자로 구조물인데, 현재 20년간 원자로 가동을 통한 중성자 조사량은 설계 한도의 45%에 도달해 있다.
적절한 수명관리와 가동 중 점검을 통해 안전성과 수명 관리를 해나갈 것이다.
-차기 원자력 밸리 추진은 어디까지 왔나.
▲현재 대덕연구단지 내 여유 부지가 없다. 산업단지 조성은 정부, 지자체, 연구개발특구 등과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와 연계해 적절한 시점에 제3밸리 조성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구원 주요 R&D 계획
방사선이나 방사성 폐기물 처리 등 다양한 R&D를 수행한다. 주요 R&D로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 재처리)과 차세대 원자로 개발을 꼽을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평화적 재활용을 위한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은 연간 10톤 정도 처리할 수 있는 공학 규모의 시설인 프라이드(PRIDE)에서 지난 2013년 제염해체 기술 개발, 지난해엔 감손우라늄(DU)을 이용한 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올해는 모의 사용후핵연료(Simulated Fuel)를 이용해 단위공정별로 성능시험을 수행할 예정이다. 사용후핵연료 차세대 관리 공정 시설(ACPF) 핫셀에서는 실증실험에 대비해 모의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한 성능시험과 원격운전성 시험을 완료할 계획이다.
원자력연구원은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소(INL)에서 수행 중인 2단계 한미 핵연료주기 공동연구를 통해 실제로 사용후핵연료를 공정당 킬로그램(㎏) 규모로 처리할 수 있는 파이로 공정장치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부터는 실제 사용후핵연료를 써서 회당 2㎏의 전해환원 시험을 수행하는 등 데이터 확보에 주력할 예정이다.
원자력연구원은 오는 2020년까지 파이로프로세싱의 기술성, 경제성, 핵확산저항성을 검증하고 향후 국내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을 위한 상용 시설 구축 기반을 마련한다는 전략을 세워놨다.
파이로프로세싱 기술과 연계한 4세대 원자력시스템 개발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소듐냉각고속로(SFR) 부문에서는 2013년 착수한 150㎿e급 원형로 핵증기공급계통(NSSS) 예비설계를 올해 완료해 종합적인 안전성에 대한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사전안전성 검토 준비에 돌입할 계획이다.
원형로 안전성 입증을 위해 필수인 잔열제거성능 등 주요 설계개념 검증 및 주요기기 성능검증을 위한 종합효과 시험시설인 ‘스텔라(STELLA)-2’의 기본설계도 수행한다.
향후 성능검증 시험을 토대로 설계 개발을 진전시켜, 오는 2020년 150㎿e급 SFR 원형로(PGSFR) 특정설계 승인 획득-2028년 SFR 원형로 건설 완료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올해 하반기부터는 PGSFR 금속연료 피복관 조사 성능 시험을 러시아 고속실험로 BOR-60에서 실시한다. 이 시험이 잘 마무리되면 특정설계 인허가를 위한 피복관 조사 성능 자료 생산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원자력 수소 생산을 위한 초고온가스로(VHTR) 기술 개발 부문에서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원천 설계해석코드 검증을 수행하며, 초고온헬륨루프(HELP)를 이용해 중간계통의 고온 특성을 평가하는 실험을 수행할 계획이다. 하나로 연소시험을 완료한 피복입자핵연료 조사후시험을 통해 고온 연소성능도 올해 평가할 계획이다.
◆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구원장은?
1986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귀국한 유치 과학자다. 당시엔 해외에서 유학한 뒤 선진국의 연구 및 문화 환경, 좋은 직장을 포기하고 국내에 돌아와 애국심을 발휘하던 과학자들이 많았다. 그 중의 한 명이다.
1954년 생이다. 충북 청주고를 나왔다. 학부는 처음 한양대학교 원자력공학과에 입학했으나, 학업 도중 미국으로 건너가 1978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버팔로캠퍼스에서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했다. 석·박사학위는 1980년부터 1986년까지 미국 미시간대학교 대학원에서 원자력 공학 전공으로 획득했다.
박사학위를 딴 뒤 한국원자력연구원구원에 유치과학자로 돌아와 1년 가까이 근무했다. 당시 방사선 분야 R&D를 주로 수행했다. 이어 1987년 한양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방사선분야 R&D와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현재도 한양대가 방사선 분야에서는 강한 편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는데, 그 이유가 모두 김 원장의 25년간의 노력의 산물이다. 지금은 KAIST에도 원자력 공학과가 만들어져 3개 대학이 축을 이루고 있으나 그 당시에는 서울대와 한양대가 이 분야에서 쌍벽을 이뤘다. 김 원장의 지도를 받은 졸업생들이 현재 원자력연구원이나 원자력안전기술원, 대학 등에서 핵심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990년 미국 MIT 원자력공학 객원교수, 1993년 OECD 국제원자력데이터뱅크 한국담당 연락관과 중앙교육평가원 국비유학생선발 공학계열 심사위원장을 지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원자력안전자문위원회 부위원장, 2012년부터 2014년까지 UAE 원자력공사(ENEC) 원자력안전점검 자문위원회(NSRB) 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원자력학회장, 국가원자력위원회 위원 등도 역임했다.
현재 미래창조과학부 연구개발특구위원, 원자력협력재단 이사장, 국제방사선방호연합회(IRPA)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성격은 온화하지만 강단이 있는 편이라는 평이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