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기술 연구개발(R&D) 사업의 기획과 평가, 성과관리 전반에 걸쳐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R&D 투자에도 사업화 수준이 미흡한 문제를 개선하고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국가 연구개발 체계 전면 점검에 나선 것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R&D전략기획단을 중심으로 R&D 사업의 과제와 성과관리 개선에 돌입했다. 최근 전략기획단과 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 유관기관과 연구소, 학계·업계 전문가가 모여 문제점을 도출하고 개선방안을 협의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여러 의견 수렴을 거쳐 이르면 내년 사업부터 개선 방안을 연구개발 사업에 적용할 방침이다.
우리나라의 산업기술 연구개발 사업 예산은 연간 3조4000억원에 달한다. R&D의 양적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에 연구개발 이후 사업화 수준이 낮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사업화기관의 전문성 미흡과 연구개발 예산의 유연성 부족, 유사 중복사업의 난립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전략기획단은 △사업관리 △과제관리 △성과관리 3개 분야에서 개선할 핵심과제를 도출하기로 했다. 사업관리에서는 R&D의 포트폴리오와 전략적 예산 배분, 단계별 사업 목표와 사업구조 조정 등의 개선안을 마련한다. 과제관리에서는 과제 기획과 컨소시엄 구성, 과제단위의 성과 목표와 과제 선정, 중간 및 최종평가, 사업화 과정을 체크한다. 성과관리에서는 성과지표와, 사업의 홍보, 성과 인센티브제 도입 등을 점검할 방침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지출은 2013년 기준 4.4%로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최고다. 반면에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R&D 경쟁력 순위는 지난 2009년 11위에서 2013년에는 17위로 오히려 낮아졌다. 같은 기간 세계 1위 품목 수도 73개에서 64개로 감소했다.
국가 R&D 사업을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시장과 제품 위주의 산업기술 R&D로의 전환이 시급한 이유다.
R&D전략기획단은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아홉 가지로 도출했다. △원천기술 부족과 사업화 부족 △인력양성사업의 시장연계 미흡 △사업 차원의 관리시스템 부재 △기술개발 포트폴리오 연계성 부족 △사업 규모의 불균형 심화 △사업추진 PD지원 부재 △R&D 예산 조정의 유연성 부족 △대학 및 출연연구원의 사업화 역량 부족 △사업화 기관의 전문성 미흡 등이다.
유사 중복 사업이 많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올해만 소재부품기술개발, 그래핀소재부품상용화기술사업, 소재부품기술기반혁신 등의 유사한 과제가 별도로 시행된다. 첨단의료기기생산수출단지 지원,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조성, 핵심의료기기제품화 기술개발 등의 과제도 중복의 소지가 있다.
국가 연구개발 성과를 높이기 위한 개선 논의는 시작됐다. 하지만 수십 년간 관행적으로 진행돼온 R&D 사업 전반의 전면 개편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업 방향이 갑작스럽게 바뀌게 되면 실제 과제를 수행할 기업이 혼선을 겪을 수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모든 제도를 한 번에 개편하기보다는, 시장에서 요구되고 시의성이 있는 것부터 순차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며 “기초과학 연구개발과 달리 산업기술 R&D는 무엇보다 실제로 제품·서비스가 창출하는 데 개선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표] 산업기술 R&D 사업 관리의 주요 문제점 / 자료: R&D 전략기획단>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