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 출시된 초창기 휴대폰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지만 휴대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크기가 큰 ‘벽돌폰’이었다. 기술 발전에 따라 현재 스마트폰은 놀라울 정도로 작아졌을 뿐 아니라 얇아졌다. 지금처럼 슬림한 스마트폰이 가능했던 것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전자소자의 크기가 작아지고 고집적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전자소자 소형화와 집적화가 진행될수록 발열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전자기기의 발열은 부품과 기기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열을 내보내는 방열 소재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그 중 질화알루미늄은 탁월한 방열 성능으로 LED용 방열판, 금속박막 접착 기판, 고출력 방열판 등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어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는 현재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 쓰는 실정이다.
나는 20여년 연구를 진행해 현재 일본이 세계시장의 70~80%를 장악하고 있는 질화알루미늄 분말을 보다 경제적이고 간편하게 만들면서 순도까지 높일 수 있는 제조공정을 개발했다.
처음 연구를 시작한 1990년대 초에는 순수하게 학문적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2011년에 상업적 생산이 가능한 제조기술을 찾아낼 수 있었다. 새롭게 개발된 제조기술을 특허출원하고 기술 이전할 회사를 직접 찾아 나섰다. 당시만 하더라도 학교 내 기술이전센터 같은 연구성과 사업화를 돕는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몇 기업은 연구실을 찾아와 기술이전 상담을 하기도 했지만 상업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번번이 기술 이전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기술 사업화를 위해선 우선 파일럿 규모의 생산을 통해 검증이 필요했으나 이러한 설비에 선뜻 투자하려는 기업이 없었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20여년의 연구가 물거품이 될 위기였지만 다행스럽게도 ‘2013년 연구성과 사업화 지원사업’ 대상기술로 선정돼 수도권의 한 중견기업과 기술이전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파일럿 규모의 생산설비 구축과 그 설비에 맞는 제조 조건을 찾는 과정 등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루 생산량을 연구실 생산량의 약 1000배(5㎏/일)까지 늘려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상업적으로 판매가 가능하도록 물성과 신뢰도 시험을 이어가 이르면 내년 하반기에는 시제품이 출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정부의 R&D 예산은 18조9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OECD 국가 중 1위 규모다. 매년 많은 R&D 예산 투입으로 특허와 논문의 양적 지표는 각각 세계 4위와 10위지만,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업화 성과는 부진하다.
정부 R&D 예산의 상당 부분이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에 투입되지만 대부분 연구가 특허 및 논문 발표에 그치고 만다. 대학에서 나온 연구결과가 논문 발표 및 특허출원된 이후 사업화에 필요한 후속 연구가 계속돼야 하는데 대학에는 그 후속 연구 수행이 가능한 인력이 없거나 부족한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연구실 특허와 논문이 연구자들의 작품이라면 그 작품을 사업화해 세상에 필요한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선 또 다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20년간 연구해온 질화알루미늄 분말 연구라는 ‘작품’이 성능 좋은 방열 소재 ‘제품’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정부 지원사업처럼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초기설비 투자 및 예산 지원, 전문 인력 양성 등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정우식 영남대 교수(화학공학부) wsjung@y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