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 윤모씨(55)는 얼마 전 어깨통증을 호소하며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일주일 전 동네병원에서 맞은 주사가 잘못된 탓이다. 병원에서 질병과 상관없는 주사를 처방해 생긴 바이러스가 염증을 일으켰다. 대학병원 의사는 ‘동네병원에서 맞은 주사가 잘못돼 염증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의 소견서를 써줬지만 의료사고를 입증할 증거가 되기에는 불충분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환자가 의료인의 의료과실을 입증하도록 돼 있다. 지난해 가수 신해철 씨의 사망사고와 관련해서도 원인이 의료과실에 있음을 입증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수고가 필요했다. 의료지식이 부족한 환자와 보호자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의료사고는 의료인의 잘못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의료사고가 의료기기 작동과정에서 발생했다면 제조사의 책임인지, 의료진의 잘못인지, 그것을 판 중고업자 탓인지 책임입증이 더욱 어려워진다.
중고의료기기 분야를 취재해 보니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업계는 중고의료기기 검사필증제에 불만을 토로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도입한 검사필증제 때문에 인증비용이 많이 든다는 게 골자다. 업계는 인증검사 비용을 낮추든지, 검사 과정을 대폭 줄이라고 요구한다. 시장 논리로만 따지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사람을 진단·치료하는 의료기기에 ‘경제적 잣대’만 들이대기는 어렵다.
지난해에는 의료기기 판매업자가 안전사고 방지장치도 없는 불량 중고 의료기기를 수입해 팔아 220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이 업자가 판 MRI는 환자가 검사를 받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불량품이었다. 성능과 안전검사를 받지 않은 제품이 유통된 게 문제였다. 의사들도 새 제품이 비싸다 보니 슬쩍 눈을 감고 뒷돈을 받아 병원에 들였다. 만약 누군가 이 불량품으로 검사를 받다가 목숨을 잃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식약처는 더 높은 강도의 관리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검사비용이 너무 비싸면 낮출 필요도 있다. 하지만 생명을 좌우하는 의료기기의 성능, 안전검사는 철저해야 한다. 품질을 확인하는 절차를 세우고 사후 검증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