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이 화제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영화에서 언뜻 보이는 것처럼 전후 60년 동안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큰 발전을 이룩했다. 소재, 부품, 장비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철강재, 화학재 등을 생산하고 있다. 그 어느 나라도 해내지 못했던 ‘상전벽해’ 수준의 성과를 단시간에 이뤄냈다.
현 정부 들어 단연 화두가 된 단어가 바로 ‘창조’다. 창조의 사전적 의미는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냄’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야만 차별화된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우리 기업들도 그동안 사용했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만으로는 더 이상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제는 애플, 구글, 3M 처럼 새로운 가치와 제품을 만들어내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만 한다.
제조업 분야의 미래 신산업을 선점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선 첨단소재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그래핀을 중심으로 하는 탄소소재는 세계적으로 가장 치열한 개발 경쟁이 붙은 유망 분야다. 그래핀 소재는 물리적, 화학적으로 매우 우수한 특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많은 응 용 분야에서 보완재, 대체재, 신규 소재로서 적용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 7년간 많은 R&D 자금을 투자해 그래핀 소재의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매진해왔다. 그 노력의 결실로 다수의 우수한 특허를 확보했고, CVD 그래핀 분야에서는 세계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수 기술 확보에도 불구하고 그래핀의 국내 상용화는 아직 요원한 상태다. 반면에 앵스트런(Angstron), XG사이언스(XGsciences), 보벅(Vorbeck) 등 미국 회사는 그래핀 플레이크(Flake) 분야에서 파일럿급 생산체계를 갖추고 제품 판매를 진행하고 있으며, 후발주자였던 중국조차 몇몇 업체들이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그래핀 응용제품 관련 기업들은 해외 업체를 통해 샘플과 제품을 공급받아 개발을 진행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지난해 8월부터 그래핀 사업화 촉진을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산학연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그래핀 사업화 전문가위원회’를 발족해 우수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사업화가 지연되는 원인을 검토했고, 그래핀 소재의 산업 적용을 가속화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힘을 기울였다.
해외 선도개발 업체들의 핵심 특허 및 비즈니스 모델을 분석했으며, 정부 R&D에서 공백 분야는 없었는지 살펴봤다. 여러 기업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 선순환적인 그래핀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이 같은 미래부 행보는 2013년부터 이미 ‘그래핀 소재 부품 기술개발 사업’을 진행 중인 산업통상자원부와 부처 간 협력과 지원도 큰 역할을 했다.
미래부와 산업부는 최근 ‘그래핀 사업화 촉진 기술 로드맵 공청회’를 열었다. 두 부처는 ‘그래핀 소재 및 응용제품 조기 상용화를 통한 그래핀 시장 선점 및 신시장 창출’이라는 목표를 이루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래핀 원소재 공급 체계 구축, 응용제품의 조기 상용화, 기업주도 산학연 유기적 협력 체계 운영의 세 가지 전략도 제시했다.
공청회에서 개진된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로드맵을 수정 보완하고 철저히 실행해 나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중복투자는 막고 필요한 부분에 선별적으로 집중 투자하는 두 부처의 협력 모델은 향후 정부사업에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미래 소재·부품 신산업에서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해선 유연하면서도 협력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개별적인 역량으로 세계적인 소재·부품 선도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은 우리 대기업들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중소·중견기업이라면 새로운 도전에 따른 위험을 짊어지기가 더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가 기업들의 새로운 개발 시도에 대한 위험 요소들을 분담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미래부와 산업부가 손을 맞잡고 추진한 이번 프로젝트는 의미가 더욱 크다. 그래핀의 퍼스트무버가 우리나라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핀 사업화 촉진을 위한 노력이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고 큰 성과를 맺어 신소재 분야 R&D 사업화의 좋은 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희원 일진그룹 경영기획실장(일진제강 대표) Heewon.Jung@ilj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