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일본 출장 때 일이다. 도쿄의 한 호텔 방에서 TV를 보다가 유력 방송채널에서 저녁 9시와 아침 6시 두차례 주요 뉴스시간에 ‘유엔 기후변화 회의’에 관해 보도를 하는 것을 보고 새삼 놀랐다. 뉴스는 최근 페루 수도 리마에서 열린 ‘제20차 기후변화협약총회’에 관한 내용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이 회의에 대한 간략한 소개 정도가 전부였지만 일본 방송은 접근 자체부터 달랐다.
전기자동차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유엔 총회에 대해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탓에 자책을 하게 되면서, 일본 사회가 느끼는 글로벌 이슈에 대한 폭과 깊이에 큰 인상을 받았다.
세계적 이슈를 일본에서는 실시간으로 주요의제로 다룬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밖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큰 흐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은 생각을 갖게 했다.
이번 기후변화협약총회에서 채택된 결의문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우리사회에서 그 보도와 논의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지구온난화로 대변되는 기후변화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적 도전이며, 경제성장, 사회발전, 인류 지속성 등에 대한 근본적 위협을 가한다는 데 온 인류가 인식과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음은 명확한 사실이다.
불과 몇 년 전 인천 송도에 관련 국제기구를 유치했다고 떠들썩하게 자축하던 기후변화기금이 기후변화협약총회의 주요 기관인데도 그 활동에 대한 인식도 크게 넓혀지지 않고 있다.
탄소배출량 세계 제7위라는 불편한 실적을 보유한 우리는 이 문제에 누구보다도 앞서야 할 상황이다. 리처드 하인버그(캘리포니아 뉴칼리지대)는 그의 저서 ‘미래에서 온 편지(Peak Everything)’에서 현재 인류문명에 대한 가장 큰 위기로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을 꼽았다.
이 도전을 모든 문제에 앞선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또 복합적 인과관계로 얽힌 문제들은 전 지구적 접근과 해결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대책으로 화석연료의 사용과 그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성장과 안락’이라는 ‘문화적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야만, 서서히 뜨거워지는 솥 속의 개구리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값싼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생활이 정상이 아니고 허상이라는 깨달음 그리고 구체적 방안을 온 사회가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외침인데, 누구도 이러한 현재진행형 위기를 부정하거나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데 전적으로 동감이다.
흔히 위기를 기회로 보라고 말한다. 최근 화제가 된 ‘기후불황’의 저자 김지석(영국대사관 기후담당관)도 기후변화로 초래된 기후위기에서 기후불황의 경제·산업적 위기를 내다본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고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기후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새해 탄소배출권 도입 등 산업계가 기후변화에서 오는 영향을 직접적으로 겪게 되는데,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누구나 할 것 없이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이라는 위기를 고민하고 근본적 성찰을 할 시점이다. 전기자동차가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이라는 시대적 위기에 대해 당장 실천이 가능한 대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과 오는 3월 제주에서 열리는 국제전기차엑스포가 우리 모두에게 ‘문화적 혼수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그만 위안과 함께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박재찬 제주국제전기차엑스포위원회 사무총장 jc802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