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스웨덴에서 우유 관련 대규모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우유 해악론’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연구 결과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유는 몸에 해롭다’는 것이다. 우유를 많이 마실수록 암과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올라갔으며, 자연스럽게 사망 위험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유는 몸에 해로운 것일까?
먼저 우리가 우유 혹은 우유로 대표되는 동물의 젖을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인류가 동물을 길들여 가축화시키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혁명이 시작된 1만년 전부터였지만, 오랫동안 우유를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개의 성인에게는 우유 속 유당이 소화 불량과 설사를 일으키는 일종의 식중독 물질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사실 유당은 포유동물의 아기에게는 매우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다. 하지만 유당 그대로는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락타아제라는 효소를 이용해 유당을 포도당과 갈락토오스로 쪼개어 이용한다. 포유동물 아기는 젖을 먹고 자라기에 락타아제 분비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락타아제를 만들 수 없는 이들은 소화기관이 유당을 분해하지 못해 가스가 차고 갑작스런 설사를 하는 증상 즉 유당 불내증으로 고생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이 처음부터 유당 불내증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모유에는 우유보다 유당이 두 배나 더 들어 있지만, 아기가 유당 불내증으로 고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의 DNA에는 락타아제를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락타아제는 대개 성인이 되면서 더 이상 분비되지 않는다. 유당은 젖 속에만 들어 있고 자연 상태에서는 성인이 되어 젖을 먹는 일이 거의 없다. 때문에 락타아제가 존재할 이유가 없고 락타아제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지는 것이다.
우유가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먹을거리가 된 것은 두 번에 걸친 ‘우유 혁명’이 일어난 후였다. 첫 번째 우유 혁명으로 유당이 없는 버터, 요구르트, 치즈 등을 만들어 먹게 됐다. 두 번째 우유 혁명은 낙농 발전으로 우유를 마시는 습관이 이어지고 낙농을 하는 민족 사이에서 어른이 돼서도 락타아제 유전자(LP유전자) 스위치가 꺼지지 않는 돌연변이를 지닌 구성원 수가 늘어났다.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우유를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일종의 생존 경쟁력이 됐을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성인이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만드는 LP유전자 지속 돌연변이는 춥고 건조한 유럽 지역에 인류가 정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는 전통적으로 ‘우유는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가치관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최근 제시되는 우유 해악론은 인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수천 년 전과 다르게 변화됐다는 데 기원을 두고 있다. 우유는 여전히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식품이다. 하지만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는 말이 영양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과 동일시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우유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곳은 영양소 과잉이 문제가 되는 지역이다. 이런 경우 지나친 우유 섭취는 비만과 성인병 발생 비율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게다가 낙농업이 거대 산업이 되면서 우유 생산 과정에서 성장 호르몬 유도제 투입이나 유전자 조작을 통한 형질 전환 등의 방법과 얽히게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유 속에는 자연 속에서 방목된 가축의 젖에 존재하지 않던 성분들이 포함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조건적인 우유 예찬론이나 해악론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우유 섭취량과 섭취 방법을 결정하는 현명한 우유 섭취 자세가 아닐까.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