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5일은 국내 원전 역사상 가장 시끄러운 하루였다. 이날은 월성 원전 1호기의 계속운전 여부의 결론이 예고됐었다.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은 고리 1호기 이후 국내 두 번째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 설립 이후로는 첫 계속운전 결정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이날 원안위는 계속운전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안건을 다음 회의로 넘겼다.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기도 했다. 앞서 발표한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보고서에서도 전문가 검증단과 민간 검증단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갈등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계속운전에 대한 결단의 시간은 다가왔지만, 논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월성 1호기 논쟁의 이유
월성 1호기에 대한 논쟁은 크게 안전성과 경제성 두 축으로 갈린다. 단순히 월성 1호기 그 자체만이 아닌 그동안 산업계와 반핵단체들이 평행선을 그리던 갈등의 축소판이자 결전의 장이다.
가장 먼저 논의되는 것은 당연 안전성이다. 안전 이슈에서 항상 언급되는 사례가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이며, 월성 1호기는 1983년 가동 설비라는 점이 약점으로 언급되고 있다. 가동을 시작한지 30년이 넘었으니 노후설비이고 안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그 우려는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수소폭발과 방사능 누출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이 부분에서 원전 산업계는 가장 먼저 구조적 차이점을 설명한다. 국내 원전은 핵분열로 가열한 물을 바로 사용하지 않기 위해 증기발생기라는 설비를 가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과 달리 방사능에 노출된 증기가 메인설비 계통에서 순환하지 않는다. 월성 1호기는 국내 유일의 중수로형 원전이지만 이 역시 대다수의 경수로형 원전처럼 방사능에 노출된 물이 직접 설비에 사용되지 않는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국내 원전 전반에 설비 개선 작업으로 다양한 안전장치가 추가됐다. 쓰나미를 대비해 해안방벽을 높이고, 수소제거설비와 격납건물 여과배기계통을 설치가 대표적이다. 중수로형 원전의 심장인 연료압력관도 모두 새로 교체했다. 월성 1호기라는 이름과 위치만 그대로일 뿐, 새로운 설비가 들어와 있는 셈이다. 비상 시 전력공급도 비상발전기 2대와 이동형 발전차량을 구비해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계속운전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이 역시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얼마 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보고에서 전문가 집단은 합격점을 부여했지만 민간 집단은 다수의 개선사항을 도출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비상전력 공급 대책으로 예비발전기 2대와 이동형 발전차량이 있지만 이 모두가 고장나는 상황에 대비해 이동형 발전차량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경제성 부분에서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반대 측은 노후원전인 만큼 효율이 떨어지고 용량도 크지 않아 지금과 같이 전력수급 안정세에서는 계속운전의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반면에 원전 산업계는 설비개선 비용을 둘째로 하더라도 연료대체 효과가 크다는 입장이다. LNG 발전을 줄임으로써 전기요금 인하효과를 볼 수 있고 온실가스 감축으로 기후변화 대응 등의 부가적인 효과까지 생각하면 경제성은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12일 계속운전 재심의 결론내야
월성 1호기의 운명은 12일 결정될 예정이다. 원안위는 이날 1월 15일 결론내지 못한 계속운전 안건을 재심의한다. 이날 역시 결정이 미뤄질 수도 있지만 원안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15일 결론을 한 차례 미루면서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 에너지 정책 부문에서도 원전 계속운전에 대한 방향 설정을 더 이상 미루기 힘들다.
이미 세계 원전 중 200여기가 넘는 발전소들이 계속 운전 중이거나 계속운전 승인을 받았다. 분명 계속운전은 논쟁의 대상이긴 하지만 통계상으로는 이미 일반적인 일이 된 지 오래다. 반대 측에서는 해외사례로 독일을 자주 언급한다. 원전을 폐쇄하고 신재생에너지를 육성해 에너지 수급을 하는 국가로 소개한다. 독일은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에너지 정책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구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독일이 원전을 폐쇄하고 신재생에너지에 힘을 실을 수 있는 배경에는 프랑스가 원전으로 생산하는 대규모 전력이 있다. “원전 하나 정도는 폐쇄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만 “원전 하나 계속운전하는 것이 대세에 지장은 없다”는 상반된 의견도 있다.
지금의 논란은 같은 대상과 사안에 대해 각자의 생각과 해석이 다른 문제다. 전문가들이 과학과 이성적인 접근을 주문하는 이유다. 과학이 그 특성상 완벽을 주장하지 못하고 100%를 확신하지 못하지만 동일한 사안의 다른 주장에 대해서는 경험과 통계, 과학적 선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전과 보안 문제도 마찬가지로 한수원은 계속해서 설비개선을 하고 있지만 가능성을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으며 결국 논란은 끝이 나질 않는다. 지금 월성 1호기의 안전 논란은 복숭아씨와 같다. 꼭 필요한 것들은 복숭아씨처럼 단단하게 지키고 그렇지 않은 것은 복숭아의 과육처럼 부드러워야 하지만, 월성 1호기는 씨와 과육의 경계 없이 씨만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 관계자는 “원전은 가장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이슈”라며 “현장에서는 찬성 주민과 반대 주민의 농성이 계속되고 정치, 사회 분야에서도 서로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지금 결단을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계속운전 선택 앞둔 월성 1호기를 가다
4일 방문한 월정 원전에는 흐린 날씨에 눈과 비가 조금씩 섞여 내리고 있었다. 계속운전의 찬반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12일 원안위 전체회의 안건 재상정의 긴장감이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발전소에 도착하기 전 보았던 각종 선전문구들과 홍보관 옆에 지어진 농성 막사, 그리고 간혹 들려오는 음악과 구호들은 현장 방문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월성 원전 1호기가 전력생산을 멈춘 것은 2012년 11월, 그 이후 이곳은 2년 넘게 원안위의 계속운전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한수원이 계속운전의 허락을 받기 위해 월성 원전에 쏟아 부은 노력과 비용은 익히 많이 공개된 상황,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월성 1호기는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항상 노후원전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다녔지만, 현장 분위기에서 낡은 이미지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 옆에 있는 신월성 원전과 비교해도 다른 것이라곤 외부 콘크리트 돔의 모양뿐 전체적인 구조나 설비 유지 상태는 차이가 없었다.
지난해 8월 방문했던 미국의 노스아나 원전보다 시설과 주변 정리가 잘되어 있었고 출입관리는 체계적이었다. 미국 노스아나 원전은 20년의 계속운전 허가를 받아 2040년까지의 운영이 예정되어 있는 설비다.
가까이 다가가면 콘크리트 돔 측면으로 설치되어 있는 배관시설을 볼 수 있다. 노스아나 원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설비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부착한 여과배기계통 설비다. 이 계통은 노심이 녹아내리는 중대사고 발생 시 내부 압력을 밖으로 안전하게 배출하기 위한 설비다. 그 옆으로는 사용전 핵연료 저장시설을 통해 냉각수를 공급하는 송수구가 설치되어 있다. 비상 시 소방차가 내부로 냉각수를 보충해 주기 위한 장치다.
자동차의 엔진과 같은 역할로 계속운전 승인을 위해 전량 교체된 압력관은 콘크리트 돔 내부에 있는 설비로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돔 내부에는 이밖에도 7개 지역에 27개의 수소 제거 촉매가 설치되어 있어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수소폭발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했다. 2대의 비상디젤 발전기가 고장날 경우 동원되는 이동형 발전차량은 발전소보다 상부에 보관해 침수에 대비하도록 했다.
제어실과 터빈실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많은 부분에서 새단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설비 이외에도 벽과 복도 바닥, 사무실, 계단 등 모든 곳이 새옷을 갈아입었다. 발전소 출력은 멈춰서있지만, 이곳 근무자들은 정상 수준의 업무를 하고 있었다. 제어실로 가는 복도에서 방송으로 통해 들려오는 카운트다운 소리는 정지 발전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터빈실에서는 고압증기를 터빈으로 불어넣어주는 튜브(파이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구김 없이 깔끔한 튜브 모양에서 새것으로 교체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압력관은 물론 혈관인 튜브도 대수술을 거친 셈이다.
제어실은 정비 발전소 답지 않은 분주함이 느껴졌다. 7명의 운전원이 화면을 보면 분주히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발전소 출력은 멈췄지만, 원자로 냉각계통을 계속 순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비 담당자는 “원자로 출력은 멈췄지만 연료봉에서의 잔열이 있기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냉각계통은 계속 운전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계속운전 결정이 언제 내려질지 모르기 때문에 남아있는 연료와 냉각계통은 대기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담당자는 “주변 순환계통은 원전을 안전을 위해 계속 운전·관리해오고 있다”며 “계속운전 승인이 떨어지면 40여일의 정비기간을 갖은 후 바로 정상 가동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원전과 지역사회 소통 접점 찾아야
월성 1호기 앞에는 계속운전 찬성 주민과 반대 주민이 함께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월성 1호기로 인한 주민의 안위를 걱정하며 한수원을 비난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계속운전 결정을 미루는 원안위를 질책하고 있다. 월성 1호기가 지역주민 모두의 애물단지는 아닌 셈이다.
지역 곳곳에서 월성 원전이 지역주민과 함께한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원전 주변에 조성된 읍천항 벽화거리가 대표적이다. 월성 원전은 주민과의 소통을 위해 주변 주택 및 상가 건물 벽에 그림을 그리는 이벤트를 매년 진행하고 있고, 주민들은 집 담장을 흔쾌히 내어주었다. 갈등이 아닌 소통도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월성 원전이 지어지기 전부터 이곳에 살아 지금은 원전 옆에서 식당은 운영 중인 S모씨는 지역주민들이 서로 속내를 터놓고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당초는 보상확대와 이주대책 지원 등이 주민들의 주요 요구로 제안되었지만, 어느 순간 원전 폐로 주장과 함께 의견이 3개로 갈리면서 지금은 만남을 가져도 원전에 대해서는 서로 이야기를 삼가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S씨는 계속운전을 찬성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문제 없이 잘 살아왔고 원성 원전 1호기가 계속운전을 하던, 멈추던 큰 변화는 없다는 인식이다. 만약 월성 원전이 문을 닫고 한수원이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농성은 또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히려 그는 삼척과 영덕 등 원전 반대하는 곳에 계획된 시설을 울진으로 옮겨 신울진 3·4호기를 건설해야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지역 주민들 사이의 의견조차 갈리다 보니 월성 원전 입장에서도 소통의 접점을 찾는데 한계가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주민이 폐로를 원하는지, 어떠한 보상을 원하는 지, 증설하자는 의견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보상 방법에 대해서도 주민 단체들 사이에 이권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S씨는 속내를 풀어놓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농성을 하는 주민들 중에 실제 속내와 다른 사람들도 있다는 설명이다. S씨는 “실제 폐로를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농성 나가 있는 내 친구도 폐로는 수단일 뿐 실제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며 “그 속내를 풀어내고 이를 한수원이 들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