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어렵게 유치하고도 본사업 준비는 미흡해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 금융기관이 기금을 운용할 이행기구(implementing entity)에 선정되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 기금이 투입될 프로젝트를 발굴하려면 얼마 남지 않은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8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GCF 이행기구로 활동하기 위해 신청서를 낸 국내 금융기관·은행은 아직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GCF는 3월 24일부터 사흘간 인천 송도에서 9차 이사회를 열고, 신청서 접수를 완료한 후보 가운데 처음으로 이행기구를 선정할 계획이다. 국내 일부 기관이 신청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3월 이사회가 열리기 전까지 이행기구 후보로 등록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이행기구는 GCF로부터 기금 일부를 할당받아 어떤 사업을 지원할지 계획·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이행기구가 제안한 계획을 GCF가 최종 승인하면 지원 사업이 시작된다. 이행기구가 실질적인 기금운용 주체인 만큼 세계 각국 금융기관·은행은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금융기관과는 달리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녹색사업에 관심이 큰 일부 해외 금융기관은 이행기구 신청을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신청서를 낸 기관이 없다. 한국수출입은행 등이 준비 중이지만 향후 실제로 얼마나 많은 기관이 신청서를 제출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선정 기준이 까다로운 데다 세계 유수 기관과 경쟁을 해야 하는 만큼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 이행기구 신청을 한 국내 기관은 없지만 신청 가능성이 있는 일부 기관과 논의 중”이라며 “준비 작업을 추진하는 기관이 두 개 이상은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3월 9차 GCF 이사회에서 국내 기관의 이행기구 선정이 불발되더라도 이후 추가로 열리는 이사회에서 국내 기관이 후보로 올라갈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GCF는 연중 지속적으로 이행기구 신청을 받아 이사회에서 선정 여부를 결정한다. 올해 이사회는 3·6·10월에 열린다.
하지만 국내에는 녹색사업 경험이 있는 기관이 많지 않은 데다 유경험 기관이라 하더라도 글로벌 경쟁력이 입증되지 않아 이행기구 지정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그나마 사업역량과 경험을 갖춘 국내 기관은 수출입은행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수출입은행은 6월 GCF 이사회 전 신청을 목표로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신청이 늦어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GCF 평가도 까다로워질 수 있어 초기시장 선점과 정부와 업계의 총체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녹색금융 사업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GCF의 평가가 엄격해질 수 있다”며 “선진 금융기관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초기 시장을 노려야 유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기금 유치 후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서둘러 키워야 한다. GCF가 연말께 투자를 본격화할 예정인 만큼 하루빨리 프로젝트 추진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태양광 발전설비와 식수 공급기술 결합, 개도국 농업 종합개발 등 2개를 GCF 제안 사업으로 선정하고 연구를 추진했다. 하지만 GCF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완성도를 높이려면 사업의 구체화·고도화 작업이 더 필요한 실정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해 우리 정부가 준비한 사업은 개략적인 사업모델을 연구한 정도여서 실제로 GCF에 제안하려면 추가 연구작업이 필요하다”면서도 “GCF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민간기업도 적지 않아 이들이 제안할 프로젝트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선일·조정형기자 ys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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