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치권, 재계에서 법인세 인상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른바 ‘13월의 대란’으로 불린 연말정산 소동이 ‘증세 없는 복지’의 유효성 논란을 촉발한 데 이어 이제는 그 불똥이 법인세 인상으로 튀었다. 야당을 제외하고는 언급조차 하지 않던 법인세 인상론이 여당에서도 공공연히 제기되면서 당사자인 재계는 초긴장 상태다.
법인세 인상이 세수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나아가 공평과세를 실현하는 ‘신의 한 수’가 될 것인지, 아니면 경기 둔화로 실적이 부진한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켜 경제활성화를 가로막는 ‘악수(惡手)’가 될 것인지 찬반 논란이 팽팽하다.
◇법인세 올려 세수부족 해소해야
최근의 법인세 인상 논란은 한마디로 ‘돈 쓸 곳은 많은 데, 쓸 돈이 부족하다’는 문제에서 출발했다. 박근혜정부는 2013년 초 출범 이후 국민 복지 확대에 높은 비중을 두면서도 재원 마련 측면에서는 ‘증세 없는 복지’ 원칙을 고수했다. 박 대통령이 증세를 ‘국민에 대한 배신’으로 언급할 정도로 증세에 민감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세수 부족 사태가 벌어지는 등 나라 살림 사정이 갈수록 나빠졌다.
여기에 연말정산 대란으로 정부가 사실상 국민을 상대로 우회 증세를 시도했다는 것이 드러나자 형평성 차원의 법인세 인상론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소득세 징수액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늘어났지만 법인세 징수액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째 감소했다. 더욱이 2013~2014년 2년간 소득세수가 법인세수를 웃도는 역전현상도 빚어졌다.
정부는 소득세는 명목임금 상승과 취업자 증가로 자연히 늘어나는 반면 법인세는 경기 부진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유리지갑’처럼 세금이 빠져나가는 국민이 납득하기는 쉽지 않다. 경기 침체로 인한 어려움은 개인소득자도 마찬가지인데 기업과 달리 소득세는 꼬박꼬박 늘어나는 것으로 여겨지는 탓이다.
현 정부 들어 담배가격 인상, 연말정산 방식 변경으로 국민의 세금 비용은 커졌다. 기업이 부담해야 할 몫이 개인에게 떠넘겨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야당이 ‘공정 조세체계’ 확립 차원에서 법인세 인상을 요구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근본적으로는 지난 이명박정부 때 법인세 최고세율이 25%에서 22%로 내려갔지만 기업의 투자 확대를 통한 경제활성화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반대로 미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이 35%로 우리나라보다 10%P 이상 높지만 최근 글로벌 경제권에서 거의 유일하게 호조를 띠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세금을 아껴 국내 투자를 늘린 것이 아니라 사내 유보금을 쌓는 등 제 잇속 챙기기에 급급했다는 비난 여론도 팽배하다. 법인세 인상이 세수 부족을 해소할 유일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어쩔 수 없이 증세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법인세도 증세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인세 올리면 오히려 기업활동 위축
재계는 필사적으로 법인세 인상 불가 주장을 펼치고 있다. 법인세를 올린다고 세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며, 오히려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세수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우리나라 법인세가 낮은 수준이 아닌데다 세계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하는 추세라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 22%는 201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3.4%)과 큰 차이가 없다. 미국(35%), 호주(30%), 이탈리아(27.5%), 일본(25.5%)보다 낮지만 핀란드(20%), 영국(21%), 스위스(8.5%)보다는 높다.
전경련에 따르면 OECD 회원국 평균 법인세율은 2009년 23.64%에서 2014년 23.04%로 0.6%P 낮아졌다. 심각한 재정위기에 직면한 그리스·아이슬란드·헝가리 등을 제외하고 많은 국가가 법인세율을 유지(15개국)하거나 인하(12개국)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법인세율 인하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법인세 부담 비중이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비중(4%)은 OECD 국가 중 5위, 총조세 대비 법인세 비중(14.9%)은 3위다.
재계는 법인세 인상이 오히려 세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법인세율을 낮추면 기업 투자·생산이 늘어 세수가 증가하고, 반대로 인상하면 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사업이 위축돼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1998년부터 2012년까지 비금융 상장사 법인세 납부세액 추이를 분석한 결과 최고세율을 1%P 낮추면 법인세 납부액은 평균 4.2~4.9% 늘었다. 대기업은 법인세율을 1%P 낮출 때 납부세금이 5~5.9% 증가했다. 반대로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면 비금융상장사(2012년 기준) 법인세 납부액은 1조2000억원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기업 세부담이 최근 계속 늘었다는 것도 법인세 인상 반대론의 한 축이다. 최저한세율 인상, 공제·감면 축소, 기업소득환류세제 신설 등 대기업을 대상으로 ‘실질적인 증세’가 계속됐다는 주장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대기업 세부담은 2008년 전년 대비 23조7000억원 감소했지만 2009년부터는 늘었다. 2009년 전년 대비 14조9000억원 증가한 것을 비롯해 2011년 5조1000억원, 2012년 5조5000억원, 2013년 7조2000억원씩 세부담이 커졌다.
이 밖에 무역의존도에 비해 법인세율이 높아 기업 유치에 불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는 수출 44.8%, 수입 42.5%를 합친 87.3%로 OECD 34개국 중 8번째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