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발행으로 ‘피해 아닌 피해’를 본 기관이 있다. 바로 ‘돈’을 찍어내는 한국조폐공사다. 한 해 통화량은 한국은행이 결정하게 되는데, 화폐단위가 커지다 보니 발권량이 당연히 줄 수밖에 없다. 발권량이 줄면 일감이 줄어드는 게 바로 한국조폐공사다.
김화동 한국조폐공사 사장은 이에 따라 지난해 7월 ‘비상경영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돈’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찌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컸다. 조폐공사의 주업인 화폐발행량이 최고 20억장에서 6억~7억장대로 떨어지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했다.
지난해 주력사업은 고도화했다. 미래성장사업을 육성하고, 선도기술 확보에 공을 들이는 등 체질개선에 나섰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조폐공사는 창립 이래 최고 매출을 올렸다. 4276억원이다. 오는 2024년 매출 목표는 1조원으로 잡았다.
정부의 가장 큰 이슈였던 방만경영 정상화도 100% 달성했다. 처음으로 ‘5000만달러 수출탑’도 수상했다.
‘세계 5위의 조폐·보안기업’이라는 글로벌 비전 달성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김화동 한국조폐공사 사장을 만나 올해 계획 등을 들어봤다.
-지난해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한 뒤 어떻게 달라졌나.
▲지난 2010년 화폐 발행량이 20억장이었는데 6억5000만~7억장대까지 줄었다. 피크치 대비 40%나 줄어든 셈이다. 해외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신용카드 사용 증가세도 엄청나다. 1000~2000원짜리 물건을 사고도 카드로 결제하는 세상이 됐다.
지난해 7월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한 이유다. 2014년 상반기 결산해 보니 목표치에 크게 미달했다. 전 직원과의 위기의식 공유 등 공감대부터 만들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해보자는 얘기를 했다.
국내 화폐 발행이나 전자여권 제작 등 전통적인 수주 사업과 다른 나라 화폐발권 대행, 골드바 판매 등 개척형 신사업에 전사적인 역량을 결집했다.
지난해 공사 창립 이래 최고 매출액 4276억원을 달성하게 된 배경이다.
-새로운 사업화 모델로 주목받은 위·변조 방지 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이고 어떤 성과가 있나.
▲지난해 위·변조방지 신기술을 공개했다. 기술 수준은 세계 어느 시장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주위에서 연락도 많이 온다. 쓰임새가 많기 때문이다. 각종 산업 기자재나 철도·원자력 부품 등의 시험성적서 분야 등에서 유용하다.
다른 분야에서의 기술사업화 성과를 보면 금융자동화 기기 시험용지, 금융기관 잔액증명서, 병행수입물품통관용 표지 등 8개 기관, 약 8억원 규모의 계약을 완료했다.
‘보안인쇄 브랜드 보호’와 연계해서는 증명서, 포장지, 식품과 관련된 스티커 등 보안기술의 민간이전 및 신제품 개발 등을 위한 기술제휴 협의를 진행 중이다. 국내외 민간업체와의 기술이전 사업실적은 7억8000만원 규모다.
올해는 안전·보안 분야의 보안용지 시장과 브랜드 보호 분야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더 업그레이드된 위·변조방지 기술도 제2회 위·변조방지 신기술 설명회 때 공개한다.
-보안기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히든 QR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보안기술이고, 잠상기술은 보는 각도에 따라 문양이 달라 보이는데 이를 금속에 적용했다. 이 기술을 손톱깎이 제품으로 세계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국내 기업에 제공했다. 중국시장에서 90%가 짝퉁으로 유통됐는데, 잠상기술을 적용한 뒤 20%로 줄었다.
서류 위·변조를 방지할 수 있는 보안패턴 위·변조 방지기술도 있다. 아직은 도입되지 않았지만 은행권 복사를 막을 수 있는 고스트시(Ghostsee)는 복사나 스캔을 하면 경고문 등이 뜬다. 스마트시(Smartsee)는 눈으로는 안 보이지만, 앱을 실행하면 숨겨진 문자나 문양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다.
원전비리에서 논란이 됐던 시험성적서 위조도 조폐공사가 개발한 복사방해용지를 도입하면 막을 수 있다.
-새로운 모멘텀을 위한 선도기술 개발 구상은 무엇인가.
▲지난해 연구개발비로 211억원을 쏟아부었다. 전체 예산의 4.8%나 된다. 향후 5.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글로벌 선도형 핵심 보안요소기술개발을 위해선 위·변조 방지 기능을 강화한 특수 담색 자성잉크 물질을 개발할 계획이다.
금속표면의 특징이 있는 메탈릭 요판잉크 개발이나 시변각 안료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위·변조방지 요소 및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국가신분증 사업의 e-ID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도 지속 수행한다. 보안성과 기기 감지성이 우수한 차세대 융합형 보안물질이나 특정파장 감응물질, 나노광학 보안소자 등을 개발 중이다.
-골드바 사업도 펼치고 있는데.
▲지난해는 KRX 장내와 장외 시장 양방향에서 바쁜 한 해였다.
지난해 KRX 금 거래소를 개장하며 장내 시장에서 거래되는 골드바의 품질인증기관으로서 신뢰를 확보했다. 자체 브랜드 ‘오롯(Orodt)’ 골드바를 출시해 7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새해에는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강한 기업’이 되기 위한 ‘홍(R.E.D)3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이 프로젝트는 각종 제도 개선 추진 등 혁신(Revolution) 가능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기반구축, 사내벤처제도 도입·학습조직 활성화 등을 통해 강한(Energetic) 기업이 되기 위한 동력 확보, 공익성·수익성이 확보되는 미래 건강한 먹거리(Diet) 발굴 노력 촉진 등의 목적을 가지고 전사적으로 추진한다.
-해외은행권(제품) 수출 성과와 계획에 대해 설명해 달라.
▲세계 경제침체와 글로벌 시장의 경쟁 심화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 ‘5000만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리비아에는 주화, 페루에는 지폐를 제조해 공급했다. 해외 은행권 용지와 안료, 주화, 잉크 등을 지난해 385억원어치 수출했다. 지난 2013년 대비 다소 줄긴 했지만 올해는 지난해 대비 두 배 가까운 623억원의 수출 목표를 잡아놨다.
올해 유로존의 양적완화 정책과 러시아 루블화의 폭락 등으로 경쟁사와 더욱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지만, 치밀한 전략과 차별화된 핵심 기술을 꾸준히 확보해 나가면서 생산 효율화와 가격 경쟁력 확보로 제2의 리비아와 페루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
-자회사 ‘GKD’에 대해 얘기해달라.
▲‘GKD’는 우리나라 지폐 원료인 면펄프를 생산한다. 원료 공급처 다변화를 위해 우즈베키스탄에 조폐공사와 대우인터내셔널이 2010년 1814만달러를 투자해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초기 운영적자로 어려움이 많았다. 세계경제가 어려워지고 제품 가격 등락이 심해 한동안 악순환이 반복됐다.
현재 정상화 단계로의 진입이 가장 시급한 목표다. 판매확대 임무를 갖고 있다.
희망은 있다. 사업다각화를 통한 매출증대와 비용절감으로 지난 2013년 54만달러의 영업이익이 발생했다. 지난해엔 102만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좋은 신호라고 본다.
완전 정상화까지는 다소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실마리는 잡은 것으로 판단한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
◆조폐공사가 꼽고 있는 미래성장사업 ‘TSM’(신뢰기반서비스 관리)
최근 모바일에 기반을 둔 스마트 디바이스가 등장하면서 ICT와 융합한 금융, 유통, 보안 등의 산업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종이화폐 및 상품권은 플라스틱 카드에서 모바일로 진화 중이다. 신분증은 IC카드에서 모바일 ID로 속속 전환되고 있다.
‘돈’을 찍어내는 일을 주업무로 하던 조폐공사가 새로운 사업으로 모바일 지불수단 및 인증수단 발급·관리 대행사업인 ‘신뢰기반 서비스관리(TSM:Trusted Service Manager)’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세상은 비트코인처럼 새로운 기술의 지불수단이 등장하고, 실물로 된 화폐는 플라스틱 카드를 거쳐 모바일로 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업발굴을 방만히 한다면 자칫 공사의 존폐위기는 아니어도 상당 부분 위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조폐공사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장기기술 개발 로드맵부터 만들었다. 집중 연구개발을 통해 미래 전략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것. 다른 한편에서는 미래전략실을 새로 꾸려 이 ‘TSM’을 사업 모델화하는 방안 마련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조폐공사 측은 우선 TSM이 기관의 새로운 사업 전환에 충분한 모멘텀을 제공할 것으로 보고 공사의 기본 업무인 지불 및 인증매체의 제조, 발급 업무를 모바일 매체로 ‘선제적’으로 확대하는 중이다.
TSM 사업은 제3의 중립기관이 이동통신사와 연계해 안전하고 효율적인 모바일 서비스(모바일카드, 모바일상품권, 모바일ID 등)를 수행하자는 취지의 공공플랫폼 사업이다.
이 사업에서 조폐공사는 모바일 서비스 사업자의 조력자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근 NFC기술 기반의 모바일 상품권 TSM서비스를 위해 상품권 서비스 사업자, 이통사, VAN사, 소셜커머스사, 교통카드 사업자 등과 편리성과 보안성이 강화된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하고, 조만간 시범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으로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바일 상품권 서비스가 일정 궤도에 오르면 카드사 등과 협력해 NFC기반의 모바일 카드 활성화를 추진, 국내 핀테크 산업 진화에 기여할 방침이다. 또 의료 등 서비스 산업과 접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NFC기반의 모바일 ID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TSM은 의료나 복지 등에서 서비스의 혁신 및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창조경제 실현의 핵심 ICT 인프라가 바로 TSM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화동 한국조폐공사 사장은
김화동 한국조폐공사 사장은 지난해 4월 발령나 대전 본사로 처음 출근했다.
이후 지난 연말까지 조폐공사가 대외적으로 받은 상이 연구개발투자 우수 공공기관 표창, 대한민국 교육기부 대상, 청렴도 평가 우수등급, 대한민국발명특허대전 금상 등 줄잡아 12개나 된다. 절치부심하며 직원들과 발로 뛴 결과다.
특히, 지난 연말 받은 산업통상자원부의 ‘5000만달러 수출의 탑’은 큰 의미가 있다. 창의혁신, 지속경영, 인화단결을 핵심가치로 내세운 김 사장의 새로운 도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화합과 주인의식 없는 조직은 김 사장에게 ‘팥소 없는 찐빵’과 같다. 그만큼 사람을 귀히 여긴다.
1956년생 경북 군위 출신이다. 경북고, 영남대를 나왔다. 1980년 제24회 행정고시 합격. 1994년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원에서 경제정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기획재정부에서 산업재정기획단장, 재정정책국장, FTA 국내대책본부장 등 주요 요직을 섭렵하고, 2011년부터 2년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을 지냈다.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생활도 9개월간 했다.
2003년 대통령 표창과 2007년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의 규제완화(2000, 일본), 일본의 신기업연금제도(2002, 명경사) 등이 있다. 특히 2013년 민음인에서 발간한 ‘딸에게 힘이 되는 아빠의 직장생활 안내서’는 유달리 김 사장이 공을 들인 저서다. 책 말미 ‘감사의 말’란에 언급한 인물만 32명이나 될 정도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이 책은 또 의문표를 달아놓긴 했으나 ‘화사모’(김화동을 사랑하는 모임)의 전폭적인 지원도 받았다.
성격은 모나지 않은 편. 세심하고 치밀한 면모도 보인다. CEO답게 귀를 기울여 상대방 얘기를 잘 듣는다. 부드러우면서도 추진력 강한 외유내강형으로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다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