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배럴당 100달러 선을 유지하던 국제유가가 반토막 나면서 전 세계 경제·산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40달러 선까지 떨어졌던 유가가 최근 일시적 반등으로 50달러를 넘어서긴 했으나 단기간에 100달러대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수송연료 부담이 큰 항공·물류·운송업계와 자동차 제조사들은 유가 하락에 따른 수혜를 누리고 있으나, 석유화학·조선 업계는 불황에 유가 하락까지 겹치면서 수익성이 더욱 나빠졌다.
그러나 유가 하락으로 어떤 업종이 이득을 보고 어떤 업종이 타격을 입는지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도 무의미한 실정이다. 앞으로 유가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당분간 저유가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각국의 역학관계 변화에 따라 상황이 뒤집히면 유가가 다시 급등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유가하락으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둔화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최근 신재생에너지 개발 기술 발달로 생산단가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고, 국제 환경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신재생에너지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수력·바이오매스·지열·풍력 등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생산 비용이 석탄·석유·가스 등 화석연료 발전 비용과 비교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만큼 떨어졌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신재생에너지 생산비용 감소가 더 깨끗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재앙에 가까운 기후변화를 방지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유가 등락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국제 유가에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급변하는 국제 에너지 정세에 또다시 휩쓸려 다닐 수밖에 없다. 오늘 유가 급락으로 이익을 얻은 기업이 언제 또 갑작스러운 유가 급등의 희생양이 될지 모를 일이다. 에너지 불확실성이 커진 지금이야말로 정교한 에너지 공급 체계 마련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에너지 대책 마련에 나설 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지난달 ‘기회를 잡아라(Seize the Day)’는 제목의 커버 기사를 내고, 지금이 잘못된 에너지 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는 한 세대에 한 번 올 법한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대부분 국가가 원유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로 불합리한 에너지 정책들을 유지해왔는데, 공급 과잉으로 개혁을 위한 여력이 생긴 지금이야말로 에너지 정책을 가다듬을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새로운 에너지 산업의 전기를 맞았다. 지난 몇 년간 전력난을 경험하며 체계적인 에너지 관리 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전력 수요자원 거래시장 개설, 탄소배출권 거래제 시행 등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도 에너지 산업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6대 에너지 신산업 정책 추진 등을 통해 에너지 사용을 효율화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 에너지믹스를 최적화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에너지 효율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어가고 있는 이때 저유가 현상과 신재생에너지 기술 발전이라는 국제적 흐름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유가 급락과 급등은 동전 뒤집기와 같다. 저유가 현상으로 인한 에너지 비용 감소는 일시적인 혜택이며, 이번 현상의 핵심은 국제 유가 변동에 따른 에너지 공급의 불확실성에 있다. 에너지 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된 지금이야말로 미뤄두었던 에너지 과제에 눈을 돌려볼 때다.
김경록 슈나이더일렉트릭코리아 대표 kyung-rok.kim@schneider-electr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