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이후 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을 두고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국제 사회 이목을 감안해 감축목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환경부와 국내 산업계 현실 여건을 정확히 반영해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산업부가 맞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정부 시절 온실가스 감축정책 주도권을 두고 힘겨루기 했던 두 부처의 리턴 매치다.
16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국무총리실 주관으로 기획재정부·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 등 온실가스 정책 관련 부처들은 ‘포스트 2020 TF’를 구성해 2020년 이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작업에 돌입했으나 3개월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온실가스 감축정책 핵심 부처인 환경부와 산업부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국제적인 명분을 앞세워 장기목표를 중기목표의 연장선상에서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산업부는 ‘산업계가 중기 감축목표 달성도 버겁다고 주장하니, 장기목표 설정에서는 현실을 잘 반영하자’며 대립하고 있다.
환경부가 장기 감축목표를 더 야심차게 설정할 것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지난해 페루 리마에서 열린 20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0)에서 ‘감축목표 후퇴 방지’라는 조항이 있다. 또 개도국에 권고된 최대 중기 감축목표 설정, 세계 최초 국가단위 배출권거래제 도입 등으로 우리나라가 확보한 기후변화대응 선도국이라는 위상을 이어가려면 국제사회의 기대에 맞춰 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강화해야 한다는 압박도 작용한다.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일부 선진국 눈치만 보며 입장을 정할 수 없고, 국제사회에서의 지위를 고려해도 야심찬 목표를 준비해야 한다”며 “준비하지 않았다가 미국·중국 등에서 강한 감축목표를 밝히면 뒤늦게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산업부는 산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현실을 더 면밀히 고려해 장기 감축목표를 설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 정부가 수립한 녹색성장 기조 아래 ‘내가 먼저(Me First)’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겠다는 분위기 때문에 산업계가 할 말을 제대로 못했다는 아쉬움이 담겼다. 산업계가 비현실적인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설정으로 중기 감축목표 달성이 묘연한 상황이라고 주장하는 만큼, 이에 대해 귀를 기울이자는 것이 산업부의 생각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당초 온실가스 중기 감축목표에 산업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 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장기 감축목표 설정 과정에서는 모두 터놓고 얘기할 수 있도록 해야 현실성 있는 목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제사회가 합의한 ‘리마 기후행동 요청’에 따라 각 국은 오는 10월 1일까지 유엔기후변화협약사무국(UNFCCC)에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이행방안을 담은 ‘자발적 기여 공약(INDC)’을 제출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이에 맞춰 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에 착수했으며, 오는 6월께 초안이 나올 전망이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
-
함봉균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