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은 세계 1등이다. 삼성·LG디스플레이 양사가 전세계 시장 5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자리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중국과 대만의 합작 공세로 국내 업체들이 더 이상 선두 자리를 유지하기가 힘든 지경까지 이르렀다. 반도체 산업보다 기술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시장이 성숙단계에 접어들면서 그만큼 경쟁자들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울트라HD(UHD) 패널 영역에서는 대만 이노룩스에게 자리를 내주기까지 했다.
1등 기업의 아킬레스건은 아이러니하게도 ‘1등’이다. 그 자리를 오래 머물수록 더욱 혁신이 어려워진다.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선두로 오르면서 조직이 방대해 졌고, 새로운 시도나 경영 혁신을 추진하기 어려워졌다. 외부 업체들과의 기술 교류와 정보 공유에도 민감해졌다. 일부 주요 고객사 눈치만 보는 폐쇄적인 기업문화로 바뀌었다. 글로벌 최대 디스플레이 행사인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에 올리는 논문 수도 세계시장 리더로서 위상에 맞지 않을 정도로 적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과에 도취해 자만해서는 안 된다. 소니의 몰락을 우리는 가까이서 지켜봤다. 기술을 배우러 다녔던 소니가 불과 몇 년 만에 TV 정상 자리를 우리에게 내줬다.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도 언제까지 정상을 유지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특히 대만 이노룩스와 같은 후발업체들의 성장을 일시적인 것으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회사는 혁신을 위한 별도 전담팀이 여럿 있고, 무엇보다 외부 업체들과의 소통이 활발하다. 특히 구글 등 혁신적인 IT 업체들과 대외적으로 매우 활발하게 협력하고 있다.
중국의 많은 디스플레이 업체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특히 중국 BOE가 10세대 LCD 투자까지 나서면 LCD 패널의 판세는 뒤집힐 수 있다.
선두 자리에 잠시 안주하는 사이 이들에 먹이가 될 수 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1등 기업의 ‘나 잘난’ 문화를 깨고 ‘더 잘난’ 업체들과 오픈 이노베이션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스스로 2등이라 생각하고 과감한 혁신에 나서보자.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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