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여행의 기본은 건강. 출발 전 비상약을 챙기고, 여행지 유행 질병을 확인해 미리 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은 비행기 안에서의 건강관리다. 좁은 공간에 장시간 있다 보면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으로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심한 경우 호흡곤란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비행기에서부터 관리하는 여행 전 건강관리, 어떻게 해야 할까.
여행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도 잠시, 좁은 좌석에 앉는 순간 불편함이 밀려온다. 어깨와 다리를 구부린 채 꼼짝도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가 붓고 저리면서 통증이 느껴지는데 이를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라 한다.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과 달리 공간이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발생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병명은 심부정맥 혈전증으로 다리 부위 혈관에서 생긴 혈전이 혈관을 타고 이동하다가 정맥을 막아 생기는 질환이다. 혈전은 혈액의 일부가 굳어 뭉쳐진 덩어리다.
혈전은 장시간 앉아있을 때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의자에 앉으면 자연히 골반 정맥이 눌린다. 눌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다리의 피는 심장 쪽으로 가지 못하고 정체되는데, 이때 피가 응고되면서 혈전이 생긴다. 특히 기내 습도는 5~15%로 낮고, 기압과 산소 농도도 지상의 80% 수준으로 피의 흐름이 둔해져 더 혈전이 생기기 쉽다.
영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90분 동안 앉아있을 경우 무릎 뒤의 혈류가 반으로 줄고, 혈전 생성 위험은 2배로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연구 결과를 보면 비행시간이 두 시간 길어질 때마다 혈액 응고 위험은 26%씩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6시간 이상 비행하거나 60세 이상의 고령자나 임산부, 흡연자, 동맥경화나 비만, 고혈압이나 고지혈증이 있는 경우, 여성 호르몬 제제를 복용한 경우 위험이 더 커진다”고 전했다.
혈전이 생겨도 다리가 붓고 저리는 데 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흡곤란이나 가슴 통증, 정맥성 고혈압이나 궤양 등의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혈전이 폐동맥을 막으면 폐색전증이 일어나 사망할 수 있다.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은 1980년경 영국의 한 의사가 기내 돌연사의 18%가 심부정맥 혈전 때문이라고 보고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국 항공보건협회(AHI)는 영국에서 매년 3만명이 심부정맥혈전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중 6000명은 생명을 위협받는다며 항공기 좌석 확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영국 상원 과학기술특별위원회 역시 정부와 항공 회사에 대책 강구를 촉구한 바 있다.
사실 심부정맥 혈전은 다리가 붓거나 숨이 막히는 증상이 나타났을 때 초음파나 혈액검사로 쉽게 진단할 수 있다. 치료도 항응고제를 투여하거나 정맥 내 카테터(관모양의 의료 기구)를 삽입해 직접 혈전을 용해시키는 주사를 주입해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진단과 치료가 늦어질 경우 사망할 수도 있으며 치료하더라도 정맥이 손상돼 평생 다리가 붓고 불편한 ‘정맥염후 증후군’과 같은 합병증을 얻을 수 있다.
예방법은 간단하다. 한 시간에 한 번은 일어나 복도를 걷고 다리를 주무르면 다리 정맥의 탄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리에 앉아있을 때 발뒤꿈치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거나 발목을 움직여 종아리 근육을 자극하면 정체된 혈류를 풀 수 있다.
물은 자주 마시되 커피나 술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물은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하고 탈수로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반면 알코올과 커피는 소변을 자주 배출하게 해 수분을 빠져나가게 한다.
여행 중 몸이 아픈 것만큼 속상한 것이 없다. 건강한 여행의 시작, 간단한 예방법으로 기내에서부터 준비해보자.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