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그림 그리는 홍대의 아티스트’ 김남성 성실화랑 대표는 인터뷰 중에도 계속되는 전화에 눈코 뜰새 없었다. ‘멸종위기동물 그래픽 아카이브’ 덕에 성실화랑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아카이브를 활용해 삼성전자와 협업한 배터리팩(배터리프렌즈, 배프)도 출시하는 등 일이 더 늘었다.
김 대표는 요즘처럼 바쁜 시기에 대한 질문에 2010년 12월, 그가 두 명으로 시작하며 직접 지은 회사 이름 ‘성실’을 가리켰다. 그는 “10년 정도 회사 소속으로 일을 하다 보니 ‘회사의 디자인’보다 ‘우리만의 콘텐츠’를 해보고 싶었다”며 “순수 한글 중에서 ‘열심히 일하자’라는 뜻으로 ‘성실’을 골랐다”고 말했다.
그가 2011년 처음 세상에 내놓은 ‘멸종위기동물 그래픽 아카이브’는 멸종 등급별로 무표정한 동물의 모습을 강렬한 채색으로 그려낸 대표작이다. 지난해 레드닷 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하고 기업들의 협업 문의도 계속되는 등 ‘동물을 구하는 착한그림’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는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아카이브의 탄생 순간을 회상했다.
“동물 주제로 소재를 찾다 멸종위기동물 목록과 사진을 보며 화가 났어요. 북극곰과 황제펭귄 등 귀여운 동물만 관심 받는 차별 때문이었죠.”
그런 그에게 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진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있는 그대로 덤덤하게 그리는 동물그림’을 시작한 계기였다. 인간에 의해 희화화된 모습대신 자연 속에서의 모습을 기억하자는 의미였다.
‘멸종위기동물을 이용한 상업화’라는 비판에도 말을 꺼냈다. 김 대표는 ‘서울대공원 코알라’ 얘기로 설명을 대신했다.
“과천 서울대공원에 코알라가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하며 무관심한 거죠. 멸종위기에 접어들어 호주 정부에서 반출을 막았기 때문인데 우리는 그걸 몰라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누가 관심을 가지고 동물보호에 목소리를 낼까요?”
이를 계기로 성실화랑은 멸종위기동물 그래픽 아카이브를 활용해 기업과 협업하는 ‘디자인 에이전시’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 동물을 위해 디자인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동물보호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수익은 동물을 위해 쓰는 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김 대표는 현재 45종인 아카이브에 대해 “앞으로도 여러 곳에 응용할 수 있도록 계속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넘버원’으로서 규모에 집착하기보다 작은 규모로 성실만의 내공을 갖춘 ‘온리원’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으로 유명한 해외 명품 기업들은 수십년 된 ‘장인’에게 디자인을 맡깁니다.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죠. 앞으로도 멸종위기동물 그래픽 아카이브처럼 ‘성실’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릴 겁니다. 옛날 홍대 거리를 가득 채웠던 작은 실력파 화랑이 되는 게 성실화랑의 목표입니다.”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