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젊은 그들' 제 4회

사진 : 김유림 기자
사진 : 김유림 기자

비극의 시작

덕길은 거진 열흘을 죽은듯이 잠만 자더니 어느새 일어나 마당을 돌아다니며 작대기질이었다. 지난 가을 찌르는 번개 때문에 나가떨어진 감나무 굵은 가지 작대기로 나는지걷는지 지랄떠는 닭들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훠이. 훠이. 이 닭대가리들. 대가리만 따서 쳐먹으면 원이 없겠다.”

백수광부 노비 할배가 쯧쯧 혀를 찼다.

“백년 묵은 배암을 잡아쳐먹었나? 쟈가 왜저래? 뒈지지 않은 것만 해도 천운인데 날라다니네?”

“주인님이 뒈지라고 해야 뒈지는거 아닌감? 아직 뒈지지 않은건 시킬 일이 남은거여.”

얼굴이 마른 논바닥처럼 뒤숭숭한 노비 할매가 쫑알거렸다.

“덕길이 쟈는 원숭이 똥꾸녁한 이 동네를 날라다닐 낯짝은 아니로구만. 자는 만주 벌판을 날라다닐 낯짝이제.”

“니는 찐따 깨고락지냐? 노비 낯짝에 어딜 날라다녀? 닭대가리나 비틀면 다행이제.”

“저 눈깔 좀 보소. 기필코 날라다닐 놈이제. 우리랑 틀리제.”

할배와 할매는 누구 듣는지마는지 상관없었다.

부리부리한 덕길의 눈깔은 그토록 미옥을 향해 있었다. 미옥은 성준과 어쩐지 계면쩍은 분위기였다. 미옥이 싫다는 대거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덕길은 심술을 퉁퉁 불려 콕콕 찌르던 닭 한 마리를 획 감아올려 미옥에게 향했다. 성준이 덕길을 보더니 먼저 반색을 했다. 그러나 그 반색의 범위 안에는 남자들만이 겨룰 수 있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 이상한 거리감이 있었다.

“덕길아. 괜찮냐?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거냐?”

성준은 꽤 다정했다. 그러나 덕길은 감히 대답도 없이 닭을 땅바닥에 패대기치더니 닭모가지를 획 비틀었다. 피가 픽 위로 솟구쳤다. 피는 성준은 옷도 적시고 미옷의 옷도 적셨다. 덕길은 자신의 얼굴로 닥친 닭의 죽어가는 피를 혀로 낼름 핥았다. 미옥은 무섭고 놀랐지만 짐짓 침착했다.

“덕길아. 내가 괜히 노비 아니다. 하나도 안무섭다.”

미옥의 이 말은 오히려 성준을 자극했다. 성준은 미옥을 뒤로 슬그머니 물렸다.

“미옥이. 뒤로 물러라.”

마치 미옥을 보호하려는 행동이었다.

때마침 멋도 모르고 휑 나는지걷는지 지꼬라지 내달리던 닭 한 대가리가 덕길의 발치에 걸리고 말았다. 덕길이 놓칠세라 닭 모가지를 획 틀어잡고 바닥애 또 패대기 칠 요량이었다.

“요놈 요놈, 맛있게 생겼네. 요놈아 지 암컷을 지키려면 진즉에 왔어야지. 머저리같은 요놈. 요놈아 이리저리 간을 보고있으니 요놈이 정녕 양반집 도련님이냐?”

성준은 덕길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덕길아. 네 놈이 패대기 칠 놈이 정녕 그냥 닭이더냐?”

그러나 덕길은 말이 없었다. 미옥은 순간 자신의 아랫도리가 불길했다. 자신이 누구의 아이를 생산하든 양반도 노비도 못되고 기어이 닭대가리가 되고야 말 것이라는 지나친 숙명성(宿命性)이었다. 미옥은 덕길에게 하소연했다.

“덕길아, 이놈아. 닭대가리 잡을 힘 있으면 일본놈들 모가지나 비틀어라.”

순간 덕길은 미옥을 보더니 스윽 웃었다. 배암처럼 서늘했다.

“요놈이 지 암컷도 못지키니 어쩌겠습니까? 뒈져야지요. 제가 요놈을 먹이고 키웠으니 제가 뒈지게 하겠습니다.”

덕길은 뻔뻔하고 천연덕스러웠다.

덕길은 닭모가지를 쎄게 비틀어 들었다. 길게 늘어질대로 늘어진 닭모가지를 손목에 감아올렸다. 당장 내리칠 기세였다. 그 순간 성준은 덕길의 손목을 잡았다. 억시게 잡았다. 덕길과 성준은 서로 치어다보며 힘을 풀지않았다.

“도련님, 글만 읽으시더니 힘도 이리 쓰시고, 아이고 계집애가 잡아도 이보다 쎄지 싶습니다.”

성준의 목에 핏대가 섰다. 덕길과 성준이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닭모가지가 찢어지며 피가 줄줄 흘렀다. 미옥은 대뜸 소리쳤다.

“그만 두십시요!!”

그러자 덕길과 성준은 동시에 미옥을 쳐다보았다. 덕길이 쥐고있던 닭을 툭 떨어트렸다.

“저는 두 사람의 여자가 되지 않을겁니다.”

미옥은 어쩌면 오랫동안 진심이었다. 덕길과 성준은 똑같이 불안하고 힘없는 눈알이었다.

“저는 누구의 여자도 되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모든 남자의 여자인 창기가 되겠습니다.”

순간 덕길이 미옥의 뺨을 뻐억 갈겼다.

“더러운 것. 걸레같은 년.”

그러자 성준이 얼른 미옥을 품에 끌어안았다.

“미옥이는 내 여자다. 손대지마라. 용서하지 않겠다.”

그러나 미옥은 성준을 확 밀쳤다. 그리고 그의 뺨을 힘껏 때렸다.

“나는 도련님의 여자가 아닙니다. 내가 노비라고 해서 도련님이 날 가질 순 없습니다.”

성준은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거렸다.

“미옥아, 아까도, 아까도, 얘기했지만 나는 너와 혼인...혼인 할거다. 반드시 그럴거다.”

미옥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동자로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전 누구의 여자도 되지 않을겁니다.”

“왜? 도대체 왜? 나는 양반이라서 안되는거냐? 그렇다면 양반을 버리겠다.”

성준은 부르짖다시피 했다.

“도련님과 혼인하면 난 일제와 혼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난 양반가문의 지배를 받아야합니다. 이는 제가 원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럼 나는 왜? 내가 대대로 노비라고 그런거야?”

이번엔 덕길이였다.

“너와 혼인하면 난 영원히 노비로 살 것이기 때문이야. 내 자식도 그렇게 살겠지. 내 자식의 자식도...”

덕길과 성준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미옥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난 나로 살거야. 자유롭게 살고싶어. 이 모든걸 떨치고 싶다고,”

미옥은 눈물을 보이며 달려가 가버렸다. 덕길과 성준은 무거운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서로를 원망하거나 하지 않았다. 성준은 덕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덕길은 성준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때 백수광부 노비 할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도련님, 도련님, 어서요.”

그렇지않아도 쪼글한 할배의 얼굴은 초죽음이었다. 성준이 무언가 덜컥했다.

성준은 불현듯 자신의 배꼽을 만졌다. 어린시절부터 떨어질듯말듯 달랑거리던 배꼽이 툭 떨어졌다.

“무슨 일인가?”

“어머님이, 어머님이...빨리 가십시오, 도련님.”

성준은 백수광부 노비 할배를 뿌리치고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어머님의 장례식 내내 성준은 얼굴을 들지 못 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미옥은 그런 성준을 보며 마음이 찢어졌다. 덕길은 그런 미옥을 보고 마음이 더더 찢어졌다.

소설가 하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