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는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린다. 매력적인 직업 때문일까. 글 좀 쓴다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방송작가를 꿈꾼다. 그러나 화려해 보이는 방송작가의 이면에는 매일같이 밤을 새우며 대본을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고통이 숨어있다. 알고 보면 ‘3D(Dangerous(위험한), Dirty(더러운), Difficult(어려운))’ 직종이다. 그럼에도 보람을 느끼며 10년째 꾸준히 시청자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김보라 작가를 만나봤다. 방송에서 사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글을 쓰는 그가 미래의 방송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자신을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
▲방송을 통해 사람들이 잊고 있는 가치를 전달하는 일이 좋아서 10년째 방송작가 일을 하고 있다. EBS다큐극장 ‘맞수’, MBC ‘기분 좋은 날’, SBS ‘생방송투데이’를 비롯해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작업했고 현재는 한국직업방송에서 ‘잡매거진’ 메인 작가로 활동 중이다.
-방송작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적 꿈이 ‘작가’였다. 9살 때 개인적으로 가슴 아픈 일이 있었는데 일기장을 보신 선생님께서 ‘문학소녀가 되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다. 백일장마다 나가보라고 독려해주셨고 그 뒤로 꾸준히 글공부를 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이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였다. 방송작가가 되기 전에는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을 하고 살아야지’ 했다. 소설가를 꿈꿨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보면서 꿈을 키워왔다. 방송 작가는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는 직업으로 매력적인 직업이다. 방송을 통해 가슴에 품고 있던 좋은 이야기, 희망 등을 이야기할 때가 가장 좋다.
-방송작가는 구성작가와 드라마작가로 나뉘는 걸로 알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구성작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구성작가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5분에서 30분, 1시간 등 시간을 조금씩 넓혀가면서 나만의 원고를 쓸 수 있는 체계라서 방송 일을 익히기가 좋다.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구성작가로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 데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구성작가의 길을 가고 있다. 또 드라마작가의 꿈도 꾸고 있다.
-방송작가가 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했나.
▲가장 중요한 스펙은 아마 ‘끈기’와 ‘인내심’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이 일을 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됐다. 학창시절 전국백일장이 열릴 때마다 참가했다. 17세에 한국청소년지도자협회 주최로 진행한 ‘제61회 전국학생글짓기대회’에서 4만5000명 중 1등을 했다. 이 경험을 살려 문학특기자로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에는 영어연극을 했다. 처음에는 인원수가 적어서 2개월만 도와주기로 했다가 책임감 때문에 3년을 도맡아 연출까지 했다. 남들은 취업 준비한다고 하나 둘 연극연습을 빠질 때 빠지고 싶었던 적은 있지만 빠질 수가 없었다. 연출이기 때문에 팀원한 명 한 명 챙겨야 했고 연극 무대를 올리는 것부터 분장까지 팀원들의 협조를 구해야 했다.
대학교 시절 KBS ‘인간극장’이나 기타 프로그램 프리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방송국에 왔다 갔다 했다. 많은 곳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한 프로덕션에서 전화가 왔다. 그렇게 EBS ‘맞수’ 보조작가로 일을 시작했다. 작가를 꿈꾸다 보니 드라마 작가의 꿈도 함께 꿨다. 방송일과 겸해서 한국방송작가협회 기초반, 연수반, 전문반까지 이수했다. 틈날 때마다 작품도 쓴다.
-방송작가라면 이것만은 꼭 갖춰야 한다는 자질은 무엇인가.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 이해심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많고 많은 사람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취재하는 사람들과의 공감능력,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
항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이면을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현상만을 볼 때 방송작가는 그 이면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 소수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으로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일조해야 한다.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던 순간은 언제인가.
▲공들여 만든 프로그램이 나간 뒤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이끌어낼 때다. 사람들이 잊고 있던 가치, 예를 들면 가족 간 사랑이라든지 장애를 이겨내는 사람들의 위대함, 삶을 열심히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 방송으로 만들어낼 때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방송작가로서 힘든 순간과 고충을 꼽는다면.
▲한계에 부딪힐 때다. 방송작가로 사는 것이 때때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작업에 부딪힌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고충은 많이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 24시간을 다 바쳐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또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막내 작가일 때는 연예인이나 선배에게 치일 때도 있었다. 서브 작가일 때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 온갖 실험도 했고 밤새서 촬영구성안을 쓰고 원고를 작성하고 섭외가 틀어지면 대체를 구하기도 했다.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방송작가의 매력은.
▲방송으로 사람을 만날 때다. 아이템에 맞게 출연자를 선정하고 섭외하는 데,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일이 많아서 돈 쓸 시간이 없고 그러다 보니 통장에 돈을 모을 수 있다.
-앞으로 어떤 방송작가가 되고 싶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시련, 슬픔, 고통, 기쁨 등의 감정은 지나간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힘든 일을 겪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가 중요하다.
-방송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좋은 직업이 아닐 수 있다. 머리 뜯고 후회하는 일들도 생기고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날도 있다. 그러나 방송작가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방송작가로 일하느라 정작 내 삶은 없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시청자들이 방송을 보고 웃기도 하고 눈물 흘리기도 한다. 방송은 시청자와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