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환경 시장은 크고 우리 환경 기업이 진출해야 할 곳은 많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환경 전문기업을 키우지 못했다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환경 전문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판을 깔아줘야 한다.”
이시진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은 사실 환경산업 해외 진출에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 환경공단의 고유 업무인 환경관리사업에 최근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등 기후변화 대응사업까지 떠맡아 눈코 뜰 새가 없다는 말이 어울린다.
그런데도 이 이사장은 남미와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 방문 시 한국의 환경사업 노하우를 원하는 협조 요청에서 우리 환경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전했다. 그는 “포화된 내수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환경 산업계가 살 길은 해외 시장밖에 없다”며 “지난 30년간 쌓은 세계 최고 수준의 환경 기술을 활용해 해외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중국·동남아·남미·아프리카 등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갈 수 있는 시장은 널려 있고, 콜롬비아·멕시코·코스타리카에는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며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 신흥 시장에서 상하수도와 폐기물 관리 등 환경사업을 추진할 때 검증된 기술력과 저렴한 가격을 원하고 있고 한국 정부가 직접 참여해주길 희망하는 곳이 많다는 전언이다. 따라서 해외 대형 프로젝트에 환경공단이 참가하고 우리 기업이 함께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이사장은 구체적인 환경사업 협조 요청 사례로 최근 진행 중인 페루 건에 대해 설명했다. 2주 전 페루 출장 시 우리나라 환경산업 발전 사례에 대한 강연을 국회에서 했는데 당시 페루를 포함한 안데스국가연합 의회 의장이 참석해 안데스국가연합과 협력을 맺고 환경 문제 해결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우리 기술은 이제 선진국 대비 95% 수준까지 올라섰는데 이를 사장시키면 국가적 손실”이라며 “현지 실정에 맞는 맞춤형 사업 개발과 업무 협력을 통해 국제 환경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환경공단이 중점 추진해야 할 사업으로 환경산업 해외 진출과 더불어 배출권거래제 조기 안정,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정착, 환경안전 강화 등을 꼽았다.
-올해 한국환경공단의 중점 추진사업은
▲가장 관심받는 환경 이슈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화평법’ ‘화관법’ 시행과 관련된 제도 정착이다. 정부에서도 법 도입과 시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제도의 안착과 안정적인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환경공단은 배출권거래제 설계 때부터 업체별 감축 목표를 부여하는 할당·조정, 배출한 온실가스 산정 시 정확성 평가, 시행 점검 등의 주시행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시설 신·증설 시 배출량의 정확한 산정으로 업체별 할당량을 조정함으로써 제도가 산업별로 공평하게 운영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화평법·화관법과 관련해서도 화학물질관리팀·화학안전진단팀 등 전담 부서를 신설해 시행 초기 혼란에 대비하고 있다. 화평법은 GLP시험기관으로서 화학물질 등록에 필요한 시험자료를 생산할 수 있도록 시험법 등 관련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화관법 정착을 위해서는 2100여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유독물질, 사고대비물질 등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검사·안전진단 업무를 새롭게 시작했다.
-배출권거래제가 시작됐지만 산업계의 반발이 심한데
▲상쇄 배출권 조기 시행, 할당량 부족에 따른 이의신청 등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먼저 시행착오를 겪어 보고 시스템을 갖춰 나가는 것이 향후 세계 탄소금융 시장을 선도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출권거래제는 환경 이슈에 ‘거래’와 ‘투자’ ‘교환’이라는 시장 개념을 도입한 제도다.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에 투자함으로써 환경 비용을 낮추고 환경 개선 효과도 얻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업체별 감축목표를 부여하는 방법은 과거 배출량 대비 일정량의 배출을 줄이는 방식인데 이 경우 과거 온실가스 감축에 많은 공을 들였던 업체는 오히려 불리할 수가 있다. 환경공단은 단순 과거 배출량에 근거한 감축목표 부여 보다는 동종 업체들 간 배출량과 적용 기술 분석을 거쳐 선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한 업체에 혜택을 주는 ‘벤치마크 할당 방식’ 도입 등 여러 대안들을 내고 있다. 배출권거래제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기업, 특히 대기업에서는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노력이 비용이 아닌 투자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환경공단이 올해로 출범 6년차를 맞는데
▲환경공단은 환경 분야에서 시너지를 내기 위해 예전 ‘환경관리공단’과 ‘환경자원공사’가 통합·출범해 올해 6년째를 맞았다. 과거에는 주 업무가 공공하수처리장 등 환경기초시설 건설·운영관리, 수질 관리, 폐기물 처리사업 등 관리 위주의 전통적 환경사업으로 국한됐으나 지금은 국민의 건강과 생활환경, 환경에너지, 환경안전 업무 등으로 변화됐다. 환경공단은 생활환경 문제를 담당하는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좋은 빛 정보센터’ ‘악취관리센터’ 등을 두고 집중 관리하고 있다. 빈번한 화학물질사고를 대비해 환경안전센터를 설치해 관리한다. 올해는 특히 현장에서부터 산업체와 근로자의 안전을 지켜나가기 위해 기존 ‘환경안전센터’에 화학안전전담팀을 추가로 설치했다. 에너지와 관련해서는 폐기물 관리 전문성을 바탕으로 폐자원 발전, 폐기물 파워플랜트 건설, 폐기물 고형연료 품질·유통관리 등을 종합 관리하는 폐자원에너지센터를 올해 출범·운영하고 있다.
-‘세계 물포럼’이 국내에서 열린다는데
▲오는 4월 대구·경북에서 ‘제7차 세계 물포럼’이 열린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가 두 번째다. 세계 물포럼은 세계물위원회가 3년마다 개최하는 세계 최대 물 관련 행사다. 이 자리에서 각국 전문가들은 수자원 위기와 극복 방안, 물 산업 진흥, 물 복지 증진 등에 대해 정보·기술·정책 등을 교류한다. 환경공단은 이번 세계 물포럼에서 ‘월드워터챌린지’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세계에서 물 문제 해결을 위한 도전 과제를 접수·선정하고, 도전 과제에 대한 ‘해결 방안’ 공모를 거쳐 세계 물포럼 현장에서 경쟁 방식으로 ‘베스트 솔루션’을 뽑는 행사다. 해결 방안에 대한 전 세계 온라인 공모를 진행 중인데, 아프리카부터 유럽·미국 등 선진국에 이르기까지 각국 실정과 관점에 따른 다양한 아이디어가 접수되고 있다. 또 세계 물 관련 정부·기업·NGO 등 리더들과 격의 없는 토론을 하는 ‘CEO 이노베이션 패널’에서는 ‘혁신의 촉진’이라는 주제로 물 관련 기술 개발, 금융·보험 등 필요 사항, 정책적 접근 방안을 논의한다.
-지속가능한 환경 발전을 위해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리 속담 중에 ‘아픈 것은 자랑해야 낫는다’라는 말이 있다. 당장 문제가 되고 돈이 들더라도 빠르게 방법을 찾고 해결해야만 앞으로 문제가 커지고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세계사에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거치면서도 ‘환경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까지 잡은 나라로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 환경공단은 무조건적 환경보전이 아닌 ‘환경을 통한 지속가능한 성장, 환경친화적 국가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환경은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아니라 ‘국토와 국민의 건강’과 ‘풍요로운 경제를 약속’하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생각해주길 바란다. 환경공단은 국가 환경발전을 이끌고, 국민의 관심과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환경 서비스를 계속 개발하면서 경제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소박스] 올해 우리기업 해외진출 지원에 중점
최근 일부 자원공기업들의 무분별한 해외 투자와 실패 사례가 사회 쟁점화되고 있지만, 환경공단은 준정부기관으로 직접 투자가 가능한 공기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환경공단의 해외 진출은 수익 창출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한국의 대표 환경기관으로 각급 국제기구에 신뢰성을 보증함으로써 우리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과 성장을 돕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환경공단의 해외 진출 전략은 환경전문 공기업으로서 신뢰도와 공공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민간 기업은 파트너로 참여해 설계·시공 등 기술력을 공급함으로써 수익을 얻는 형태다. 지난해 미얀마 양곤시와 791억원 규모의 폐기물 매립가스 발전 사업 계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환경공단은 당시 영국의 오가닉스 등 총 43개의 전 세계 환경기업이 참여한 국제 입찰에서 전문성·보증능력·해외사업의 성공사례 등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최종 사업수행자로 선정됐다.
환경공단이 해외진출에 적극 나서는 또 다른 이유는 국내 환경 산업계의 생존을 돕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의 상수도 보급률은 2014년 기준 약 98%, 하수도 보급률은 92.1%로 이미 상하수도 건설 시장은 포화 상태다.
상하수도를 비롯한 우리 건설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선 만큼 우수한 우리 기업들이 해외로 뻗어나가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취지다.
환경공단은 내수 시장 포화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결국 동남아·중동·중남미·아프리카 등 해외 환경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음식물쓰레기 등 폐자원의 배출 성장이 비슷한 중남미에서는 폐자원을 이용한 에너지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으며 물 부족과 물 오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시아에서는 수질 개선과 수처리 사업을 타진하고 있다.
중동 지역은 사막기후 영향을 감안해 대기 사업을 중심으로 추진했다. 환경공단은 사우디·튀니지 등에서 대기 모니터링 사업을 펼치고 있다.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환경 인프라 건설 시장도 활성화되고 있어 올해 중반 카타르와 UAE 등에서 사업 설명회를 계획 중이다.
환경공단은 아프리카 환경 시장도 적극 공략, 35개 아프리카국가연합체인 아프리카 물위생기구(WSA)와 공동 사업추진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그 결실로 우선 콩고에서 식수 위생 사업을 수행 중이다.
환경공단은 그동안 설계 단계에 머물렀던 스리랑카 폐기물 소각시설 설치 사업, 멕시코 콜리마주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사업, 베트남 컨터시 복합 기반시설 설치 사업, 베트남 푸궉 지방 생태 환경 프로젝트 등을 올해부터 구체화할 계획이다.
[소박스]이시진 이사장은
1956년 대구 출생인 이시진 이사장은 미국에서 환경공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경기대학교 환경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로 20여년간 교편을 잡았다. 이후 지난 2013년 환경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공부를 시작한 1981년부터 계산하면 30여년간 환경 분야에 몸담고 있는 전문가다.
그는 1979년 동아건설에 입사했다 5개월 만에 그만두고 공업계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면서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환경을 공부하려는데 당시는 국내 어디에서도 배울 곳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 시절에는 환경이라는 명칭이 아닌 ‘위생공학’이라 불렸는데 겨우 일본 책을 번역해 놓은 수준이었다. 이 이사장이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난 계기였다.
그는 지금 공공기관장으로서 정부 방침과 국민의 눈높이에 따라 공공기관 정상화, 경영 효율화, 청렴성 제고 등을 통해 공단 경영을 선진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매진하고 있다. 또 환경공학자로서 전문성을 살려 국민을 위한 환경공단의 환경 서비스를 질적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도 노력 중이다.
이 이사장이 가장 강조하는 원칙이 투명성과 윤리경영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 이 이사장은 몸소 실천하고자 애쓴다. 낮에 집무실에서는 누구든 만나지만 일과 이후에는 절대 기업 관계자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그는 환경을 비롯한 미래의 인재는 ‘외국어’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좁고 포화된 국내 시장을 탈피할 수 있는 길을 해외 진출 밖에 없는데 그 키는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 환경공단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의 외국어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이 이사장의 건강관리 방법은 14층 아파트를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8층 아파트에 살 때라 수월했는데 14층 아파트로 이사한 후 처음엔 한 번에 올라가기 벅찼지만 이제는 적응됐다.
그는 임기의 반을 지나면서 단 한 차례의 부정·비리 사건도 없었다는 것과 노사 간의 원만한 합의로 공공기관 정상화 1단계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것, 배출권거래제 지원, 폐자원에너지센터 등 새로운 업무를 서비스하게 됐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남은 임기에도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