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장에게 듣는다]유상희 전력거래소 이사장

좋은 칼이란 겉은 단단해 흠이 나지 않고 안은 부드러워 부러지지 않는 법이다. 지난해 11월 유상희 이사장이 취임한 이후 100일에 걸친 혁신작업을 진행한 전력거래소의 현재는 마치 좋은 칼을 보는 듯했다. 전력공기관의 딱딱한 문화와 부서 간 장벽에 소통의 DNA를 심어 변화를 유도한 유 이사장의 시도는 일단 합격점이다. 남은 숙제는 대외 소통과 새로운 비전이다. 그동안 아마추어 모습을 버리지 못했던 대국민 소통을 강화해 전력산업에 오해를 풀고 수급 안정화와 함께 커지고 있는 시장 변화 요구에도 대응해야 한다. 취임 100일을 맞은 유 이사장은 소통 중심의 조직 기반으로 시장과 협업을 이뤄내 전력 분야 현안을 해결해 나간다는 목표다.

[기관장에게 듣는다]유상희 전력거래소 이사장

-취임 직후 조직개편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사장이 되기 이전부터 가까이서 바라 본 전력거래소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9·15 순환정전사태 이후 계속되는 전력수급 위기에 각계의 지적이 전력거래소로 모아지면서 임직원들의 피로감은 한계치에 달해 있었다. 최고의 전력전문가 집단이지만 이러한 자부심을 느낄 여유가 없었고 패배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무언가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내부적으로도 소통을 통해 부서 간 융합과 업무 효율성을 높여야 했지만 국민과 국회, 정부와 발전사 등 대외 부문에서의 소통 노하우가 필요했다. 이 소통이 약하다보니 전력거래소의 임무와 위기시 대책을 알리는 데 있어 어려움이 있었고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종합조정실을 별도 조직으로 따로 둔 것도 이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부서 간 외부적으로는 관계 단체들과의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득해 나갈 예정이다.

-나주 시대는 어떻게 적응해 가고 있는가.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겠지만 전력거래소의 나주 이전은 커다란 도전이었다. 여기에 역대 최대 규모의 조직개편까지 함께 진행했으니 행여나 임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개인적인 노력을 먼저 말하자면 수장이 아닌 파트너로서 조직원들과 잦은 만남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교수 시절 겪었던 학교의 수평적 문화를 적용해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서로가 의지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과거 수직적 문화로는 한계가 있다. 함께 식사를 하고 미팅을 진행하며 업무보고에서는 관련부서 직원들도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조직 차원으로는 불안한 정주여건 해결과 일과 가정을 양립해 직원 사기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기업문화 개선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유연근무제가 대표적이다. 서울을 오가는 직원들의 근무여건을 위한 스마트워크 도입으로 업무 효율을 향상시켰고, 직원 가족 사랑의 날을 정해 주기적으로 강당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조직 변화의 원동력이 직원들의 긍정 에너지인 만큼 나주에서도 행복한 직장 만들기에 노력할 것이다.

-경영혁신 100일 이후 지금 전력거래소의 모습은.

▲이제 시작이지만 조직이 정비되고 상호 소통을 위한 기반이 다져진 점에서는 90점 정도를 주고 싶다. 이제 3개월 정도가 지났지만 회사 전체적인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고 직원들의 얼굴도 밝아진 것 같다. 물론 아직은 수평적 분위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직원들도 있다. 얼마 전에는 한 직원과 회의실에서 문을 열어놓고 대화를 나누는 데 꽤 부담스러워 했다. 이후 문을 닫고 회의를 했더니 다른 직원이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편한 대화가 익숙하지 못한 전력공기관의 과거 습관이 남아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그런 의견도 이사장에게 직언할 수 있는 수평적 문화가 조금씩 정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변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모두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전력수급이 안정세를 보이는 지금 새로운 비전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순위 미션은 누가 무어라 해도 당연 전력수급 안정일 것이다. 하지만 전력시장 조율자로서 시장 변화 대응을 위한 미래비전 준비도 우리의 숙제다. 전력수급 안정과 에너지 신산업 등 전력시장은 이제 전환점에 와 있다. 과거에는 전력공급이라는 양적인 측면을 고민했다면 이제는 질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소비자가 필요한 전력생산에서 더 나아가 전력을 어떤 전자기기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할 것인지 서비스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 조직개편에서 박사급 인력으로 전력경제연구실을 둔 이유기도 하다.

앞으로의 역할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스마트그리드 등 에너지 신산업이 새로운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각광받는 지금 그 중심에 있는 전력의 부가가치 창출 요구는 더 커질 것이다. 전력과 ICT의 융합을 넘어 금융과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 부문에서 비즈니스 사례가 발굴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하우들이 향후 개도국에 수출할 수 있는 지식상품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는 에너지 빈국이지만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운용하는 지식과 기술만큼은 최고 수준이다.

-올해 안에 마무리지어야 할 단기 우선과제는 무엇인지.

▲상반기 내에 나주 이전과 함께 새로 도입한 차세대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을 조기 정착시키고 기능을 개선해 시장운영과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EMS 도입을 놓고 우려의 시각도 많았지만 그만큼 전력수급에 이상이 없도록 신중을 기하고 있다.

시장제도 개선도 이제 시작해야 할 숙제다. 지금까지 전력시장은 변동비 반영시장 체제를 근간으로 하면서 고유가, 기후변화 대응 등 새로운 외부 환경요인을 시장에 적용하다 보니 복잡해지고 규제요소도 많아졌다. 시장체제를 여러 이해관계자와 협력해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좀 더 면밀히 시장 상황을 들여다보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개선해 나갈 방침이다.

-정부와 판매사업자·발전사 사이의 조율자로서 전력거래소의 미래 모델을 제시해 달라.

▲예전과 다르게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에너지 관련 정책과 제도에 관심을 주는 곳이 많아졌다. 여기에 원전, 송전탑, 환경, 요금, 수요 등 고려해야 할 불확실 요인도 많아졌다. 이러한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전력계획과 제도를 수립해 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무게가 어느 한 곳에 쏠리지 않고 각계의 다양한 의견이 수렴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이 부문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다. 앞으로는 회원사인 발전사업자들과 소비단의 전력사용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노력할 예정이다. 그동안 전력계획이 톱다운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바텀업 체제로 전환해야 할 시기가 왔다. 특히 수요예측과 관련해서는 거래소의 전문성을 더욱 제고하고 여러 전문가는 물론이고 시민단체와 협력해 정확도를 향상시킬 것이다.

◇유상희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1957년 대구 출생인 유상희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연세대와 미 노던일리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산업연구원 환경소재산업연구실장을 지내다 동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활동해 왔고 지난해 전력거래소 수장으로 취임했다.

유 이사장은 경제학과 교수이면서 동시에 전력시장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전력수요예측위원장, 전력정책심의회 위원 등을 지내면서 국가 전력수급과 정책에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포스코경영연구소 미래성장연구센터장을 역임한 바 있고, 2013년부터는 스마트에너지포럼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절약한 전기를 시장에서 거래하는 수요자원 거래시장이 개설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밖에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체평가위원, 한국환경경제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전력과 산업 그리고 환경 이슈를 지속가능 발전 개념에 통합하고 산업계와 학계, 정부를 연계해 국제적인 소통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활동을 전개해 온 인물이다.

◇마에스트로 리더십으로 ‘미래·소통·창조·행복’ 조직 설계

유 이사장이 취임과 함께 내건 전력거래소의 경영 방침은 ‘미래·소통·창조·행복’이다. 미래형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수적이고 창조적 역량으로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마지막으로 조직원의 행복을 일군다는 그림이다.

“연주회에서 더 좋은 악기는 없다.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

유 이사장이 경영혁신을 진행하면서 항상 유념했던 가치다. 개개인의 전문성과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리더십으로 임직원들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100일간의 혁신작업도 바텀업 방식으로 진행됐다. 새로운 조직개편안에 이사장의 권한을 최대한 배제하고 경영혁신TF를 통한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인사이동이 예정된 팀장급 직원과는 직접 면담해 의견을 듣고 이해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TF에서 최종 조직개편안이 나온 이후에도 유 이사장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31개 팀이 25개 팀으로 대폭 축소되는 부서통합이 진행될 수 있었다. 여기에 공기관 최초로 부서장 및 팀장 보직 시 해당 책임자의 리더십을 전 직원이 평가해 반영하는 ‘보직경쟁 다면평가’를 시행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팁 통합으로 대팀제가 되면서 그동안 세분화된 분업화의 단점은 사라지고 있다. 부서라는 칸막이로 분리됐던 직원들이 함께 일하면서 발생하는 시너지로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 현안 이슈별로는 TF를 적기에 구성, 이슈 선택과 집중 대응을 주도할 계획이다.

향후에는 시장·계통·EMS 분야 간 유기적 업무 체제 구축으로 협업 시너지를 얻기 위해 가칭 ‘콜라보세미나’를 추진할 예정이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