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남들이 기피하는 시장을 좋아하는 DNA를 갖고 있는 기업이다. 경쟁사가 수익성 악화와 미개척을 이유로 시장을 떠날 때 역공을 취하는 게 특징이다. 2003년 중국 사스 사태로 인해 모든 해외주재원이 중국을 비울 때도 남아서 꿋꿋하게 근무, 중국인들의 인심을 얻었다.
LG전자는 올해 러시아 및 독립국가연합(CIS) 시장에 HE(홈엔터테인먼트) 신제품을 확대한다. 지난해 러시아는 4분기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HE본부 영업이익 17억원, 영업이익률 0.03%의 실적 악화 원인이 된 곳이다. 하지만 LG전자는 지난해보다 올해 TV 제품군을 두 배 늘렸다. 권봉석 LG전자 HE사업본부장(부사장)이 “루블화 70% 평가절하는 수익 70% 하락과도 같다”며 신흥시장 경제불안이 수익성 악화의 원인이 됐음을 밝힐 만큼 힘든 상황임에도 도전을 이어간다.
러시아 법인(법인장 송대현)은 직접 모스크바 호텔에서 주요 거래처 관계자를 초청해 신제품 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현지 법인이 직접 신제품을 소개한 건 러시아 내 TV 세트업체 중 올해 처음이다. 올레드(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슈퍼울트라HD TV(현지명 프라임UHD TV) 등 프리미엄 TV 30여종을 공개했다. 올레드와 프라임의 ‘듀얼 프리미엄’ 전략도 소개했다. 대형 오디오(일체형 고출력 오디오) ‘엑스붐(X-Boom)’ 등 현지시장형 신제품이 눈길을 끌었다.
LG의 행보는 1998년과 비슷하다. 러시아 정부의 모라토리엄(대외 채무지불 유예) 선언으로 경쟁사들은 떠났지만 LG는 러시아를 지켰다. 2000년대 고유가로 인한 러시아 경제활황 때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2006년에는 모스크바 인근 루자에 제1 공장도 세웠다. 이곳에 지난해까지 3억6900만달러를 투자했고, 세금만 1억6816만달러를 냈다. LG전자 TV는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 기준 지난해 3분기 32.7% 점유율을 기록해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생활가전에서도 LG 냉장고와 세탁기가 각각 4년, 2년 연속 시장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선제적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했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등 현지인과 공감하는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올해 러시아 승전 70주년, 루자공장 10주년 등을 앞두고 현지 마케팅을 계획하고 있다.
LG전자는 미수교 3개국(쿠바, 시리아, 마케도니아)에서도 유사한 전략을 사용한다. 쿠바에는 서방의 경제제재 속에서도 꾸준히 최신 전략제품을 공급한다. KOTRA 아바나 무역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인접국을 거치지 않고 현지 대리점을 통한 직접 무역을 시도한다는 것이 강점이다. 정세가 불안한 시리아와 마케도니아가 속한 레반트 지역에서도 ‘뚝심’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