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연구의 글로벌 플랫폼이 될 것이다.”
정광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원장이 올해 초 내민 기관 비전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드는 기초 연구 인프라 기관’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경영의 4대 핵심가치로 고객, 소통, 창조, 청렴 등을 내세웠다. ‘대형연구시설 구축·운영·활용 대표기관’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연구 지원기관’ ‘분석과학연구 선도기관’ ‘국가 연구시설·장비 총괄관리기관’이라는 4대 발전목표도 만들어 놨다.
지난주 중동에 글로벌 플랫폼을 만들어갈 교두보도 확보했다. 박근혜 대통령 중동 순방단에 포함돼 3박 5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마스다르과학기술대학교와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UAE 석유대학 및 그리스 국립과학연구소인 데모크리토스, 미국 밴더빌트대학 등과는 협약을 체결했다.
“출연연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제게는 그 자체입니다. 평생 모든 것을 이곳에 바쳤습니다. 일도, 휴식도 모든 걸 여기서 했습니다. 저와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37년간 대덕연구단지를 꿋꿋이 지켜온 정 원장으로부터 올해 기관 운영 방침 등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2013년부터 매년 국제표준화기구(ISO) 9001 인증을 추진하고 있는데.
▲올해는 전사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첨단 연구시설·장비를 활용한 분석지원 서비스의 업무표준화 및 품질관리 프로세스를 글로벌 수준으로 정립하는 게 목표다.
지난 2년간 분석지원서비스의 고객 편의성과 분석지원 고객 신뢰도를 향상하기 위해 3개 전문연구지원 및 특성화 분야에서 ISO 인증을 추진해왔다. 2013년 첨단장비개발사업단(초정밀 가공), 2014년 질량분석연구부(단백질의약품 특성분석) 및 전주센터(재료분석)에서 ISO 9001인증을 받았다.
모두가 고객경영 차원에서 하는 일이다. 연구자들이 기초지원연의 첨단 연구시설·장비를 직접 이용할 있는 ‘개방형실험실’ 운영도 마찬가지다. 실험실 위험 상황 감지 및 웹서비스가 연동되는 ‘스마트실험실’이나 실시간 공동연구가 가능한 ‘온라인 공동연구시스템’ 등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연구부서 및 지역센터를 융합연구 위주로 재정립을 추진한다는데.
▲그동안 개별장비를 통해 분석지원 및 공동연구를 수행해왔다. 앞으로는 여러 분야 전문가 및 장비를 모아 그룹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지난달 부서 간, 지역 간 융합연구로의 연구부서 개편을 단행한 이유다.
2본부 1센터 2단 5연구부 3지원부 10지역센터를 2본부 1센터 1단 4지원부 10지역센터로 개편했다. 기존 5연구부는 2본부 산하 전문연구지원 및 특성화 분야 팀 체제로 개편했다.
대학 교수들의 개인연구와 차별화한다. 기관 고유임무에 부합한 출연연 및 산학연 간 융합연구를 지향한다.
-연구장비 전문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해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과학기술인 연구장비 전문 협동조합 ‘지구환경과학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했다.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서다. 올해는 ‘지구환경과학협동조합’에 연대측정 분석서비스 시료처리 및 단순분석 업무를 아웃소싱한다.
-올해 주요 R&D에 대해 설명해 달라.
▲슈퍼 바이오 투과전자현미경과 7T(테슬라:자기장 단위) 자기공명영상(MRI)장치를 오창본원에 설치한다. NMR-MS 장치는 서울 서부센터에 설치한다. 국내외 산학연 연구자들에게 연구지원 및 공동연구를 위해 가동할 것이다.
첨단 연구자를 대상으로 기초지원연에서 지원하는 연구시설과 장비 수준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등의 피드백도 받는다. 이 피드백은 연구시설·장비 확충 등의 근거로 활용할 계획이다.
국제 수준의 경쟁력 진단을 통해 산학연 분석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발굴하고 찾아가는 서비스 체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다.
-창조경제를 위한 기술사업화는 어떻게 하고 있나.
▲기업의 수요에 기반을 둔 맞춤형 R&D 사업의 예산 및 참여인력을 확대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예년 연평균 1억원 내외이던 중소기업 기술이전 규모가 2013년 3억3000만원, 2014년 5억1000만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분석과학 연구와 장비개발 기술을 접목한 융합기술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등 기술사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창업 부문에서는 지난해 지구환경과학 분야 분석전문 협동조합 ‘지구환경과학협동조합’이 충북대생 중심으로 설립됐다. 국내 최초 연구장비 전문직 과학기술협동조합이다. 충북대생들은 기초지원연에서 첨단분석장비 운영 및 활용기술을 교육받아 창업했다.
기초지원연은 분석지원 업무 중 아웃소싱이 가능한 분야를 선별해 교육훈련을 시킨 뒤 창업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국내 분석서비스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갈 것이다.
-중소기업 지원은 어떤가.
▲‘연구장비유지보수센터’를 통해 기업체가 보유한 장비의 유지보수, 기술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전국에 분포한 지역센터를 활용해 중소기업 근접지원 체계도 강화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충청지역 중소기업지원통합센터는 기초지원연이 운영한다. 이를 통해 충청지역 출연연의 중소기업 협력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엔 대구와 부산센터에 중소기업R&D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올해에도 이러한 지역별 근접지원 체계를 확장할 계획이다.
-대표적인 기술이전 사례를 꼽는다면.
▲식중독을 일으키는 노로바이러스균을 신속하게 농축해 검출하는 기술을 개발, 솔젠트에 이전했다. 기존에 16시간이 걸리던 노로바이러스 검출 과정을 한 시간으로 단축했다.
이 기술로 올해 노로바이러스 검출키트 제품이 개발될 예정이다. 노로바이러스 관련 국내 보유기술들의 해외 진출도 추진한다. 오는 7월에는 미국에서 기술홍보 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기관장 역할과 경영철학을 꼽는다면.
▲직원들과 소통하고 화합하는 것, 기관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기관장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기관 발전방향과 비전을 전 직원이 공유하는 것이 소통과 화합의 시작이다. 물론 모든 운영 과정에서 투명하고 청렴한 프로세스가 정립돼야 한다.
몰입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기관장 역할이다.
‘이제부터 기초과학을 연구하자’라는 개념의 접근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연구분야를 만들고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성과를 만들어 내자’는 진취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국내 과학기술계 기초가 튼튼해야 가능한 부분이다.
-여성기관장으로서 한마디 한다면.
▲1978년 표준연에서 근무를 시작할 때만 해도 여성 과학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당연히 여성 과학자에 대한 롤 모델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과거보다 여성 과학기술인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됐다. 여성 과학자로서가 아니라 남녀 구분을 떠나 ‘훌륭한 과학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는데 여성과학자들은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여자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출연연에 온 이후로 ‘우리 산업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고 과제를 진행해왔다.
여성 특유의 감성과 배려로, 또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이 속한 조직 및 사회에서 인맥을 구축하며 기여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
◆ 연구장비 국가 R&D 시동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올해 처음 ‘첨단연구장비 개발 및 실용화 지원사업’을 시작한다.
국내 연구장비산업 발전과 생태계 조성을 위해 뗀 첫걸음이다. 연구장비 개발 능력이 국가 과학기술 역량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판단에서 결정했다.
장비개발 중요성은 노벨상 수상자를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1901년부터 2009년까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304건, 539명 가운데 61건(20%), 91명(17%)이 분석장비나 분석기술 개발을 통해 배출됐다.
연구장비산업은 산학연 및 학제 간 긴밀한 협력이 필수다. 국가과학기술과 지식집약형 산업을 동시에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새로운 분석기술과 분석장비 개발은 기존 산업 고도화와 연관산업 활성화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예를 들어 고도의 기술·지식 집약적 산업이나 부가가치가 큰 산업, 고용창출 효과가 큰 산업, 산학협력연구가 적합한 산업, 파급효과가 큰 산업 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사업은 정부출연금 신규 R&D사업으로 편성했다. 예산은 올해 45억원, 5년간 280억원을 투입한다.
질량분석기, 전자현미경, 핵자기공명(NMR) 장치 등 신개념 첨단연구장비 3종을 개발할 계획이다. 또 국산 연구장비 신뢰도도 끌어 올려 국내외 시장점유율 확대를 꾀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기초지원연은 산학연 간 협업 시스템을 마련한다. 국산 연구장비 성능 검증체계를 구축하고 중소기업제품 우선 구매제도를 십분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 국산 연구장비 활용연구 지원과 상시 체험관도 운영할 계획이다. 국산 연구장비정보 포털 사이트도 구축한다. 연구장비 전문인력 양성과 해외 마케팅 지원 등도 중점 추진 계획에 넣어 놨다.
국내 연구장비개발 기업에 필요한 기술(Needs)과 대학·연구기관 등이 제공할 수 있는 보유기술(Seeds)을 연계할 방침이다. 기초지원연이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수행하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기초지원연은 촉진자로서 국산 연구장비 개발, 성능 및 품질과 응용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신개념 첨단 연구장비 개발에 대한 세부적인 중장기 마스터 플랜도 마련한다. 이를 통해 기초지원연이 국가 연구장비 국가기관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노벨상과 창조경제를 견인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광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은?
출연연 여성 기관장 4명 가운데 맏언니다.
1948년생. 경기여고,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박사학위는 미국 피츠버그 대학서 물리학 전공으로 받았다.
출연연 첫 여성 기관장, 출연연 첫 여성 유치과학자라는 타이틀이 늘 따라다닌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을 지냈다. 지금이 두 번째 맡은 출연연 기관장이다.
우리나라 미사일의 대부로 불리는 국방과학연구소(ADD) 출신 정규수 박사가 남편이다. 정규수 박사는 과학기술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기로 이름 난 인물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ADD 기관장을 하라고 몇 번을 삼고초려 해도 싫다며 거절한 뒤 국내 미사일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 영향을 정 원장도 많이 받아 때론 원칙을 고수하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 금요일 부산 출장을 1박2일로 가면 관용차와 운전기사는 당일 돌려보낼 정도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한다.
1978년 한국표준연구소(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입소해 질량표준연구실장, 압력진공연구실장, 진공연구실장 등을 지내며 우리나라 진공분야 R&D를 개척했다. 당시 처음으로 국내에 진공 연구장비를 세팅했다.
박막 두께 변화율 산출 및 공정조건 모니터링 장치 등 국내 특허 11건, 기체 유속분포측정기 등 해외 특허 7건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을 지냈다.
제1, 2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9, 10, 11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3, 4대 회장, 한국핵융합협의회 부회장, 한국환경기술진흥원 회장, 한국진공학회장, 한국계량측정협회장, 아시아태평양측정표준협력기구(APMP) 의장, 국제도량형위원회(CIPM) 위원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삼성재단이 주는 비추미 여성대상 등을 수상했다.